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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독점하고 싶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도 성장하고 싶다.

by 최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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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은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주도이다. 캐나다 중부에 위치한 이곳은 직항이 없어 서부의 밴쿠버, 동부의 토론토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와야 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동네다. 나 또한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밀의 집산지"라고 외운 것 말고는 이 도시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지금은 밀의 집산지가 아니라고 한다)

위니펙이라는 생소한 도시를 여행의 목적지로 삼은 것은 누나 때문이었다. 누나네 가족은 6년 전 이곳에 이민을 와서 살고 있었다. 이민은 맨땅에서 헤딩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직업을 구하기 위해 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던 기간에는 돈을 많이 까먹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겨울마다 찾아오는 한파는 무시무시했다고 한다. 이민 온 첫해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바람에 고생을 했다고 한다. 눈썹까지 얼었다고 한다.

다행히 매형과 누나는 직업도 구해서 삶이 많이 안정되었다. 겨울 추위에도 어느 정도 적응한 듯 했다. 덕분에 나와 아이들이 위니펙에 올 수 있었다. 누나네 집에 남는 공간이 있어 그곳에서 아이들과 머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누나네 집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 여행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서 나름 내가 세운 원칙이 있었다. 공간은 빌리지만, 아이들과 내가 위니펙에 머무는 동안 가급적 누나네 도움을 받지 않는 다는 게 바로 그 원칙이었다. 바쁘게 살고 있는 누나네에게 도움을 받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이들 육아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육아를 소홀히 했던 것도 있었다. 아내에게 미뤘던 일들도 많았다. 휴직을 기회로, 70일 동안 아내 없이 있으면서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고 그것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혼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가혹한 일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엄마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70일 간의 여행을 계획하게 된 데에는 <아빠 어디가>라는 TV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아빠와 아이들이 엄마 없이 여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육아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던 연예인 아빠들이 짧은 시간동안 아이를 오롯이 책임지면서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나 또한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했다.


2015년, 큰 아들이 일곱살이던 해 나와 큰 아들은 <아빠 어디가>를 따라해 봤다. 일본 오사카로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너무 어렸던 둘째와 그런 둘째를 보살펴야 했던 아내를 두고 단 둘이 여행을 떠났다. 단 둘이 가는 첫번째 여행이라 겁도 났지만 기대도 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박 5일, 큰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은 의외로 순탄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아이와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뛰어 다니며 다양한 놀이기구를 섭렵했다. 덕분에 아이의 발에서는 30대 아저씨의 발냄새가 나기도 했다. 수영장이 딸린 대중 목욕탕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함께 일본 라멘을 먹으며 감동도 했다. 시장 한 가운데에서 먹었던 소고기는 일품이었다. 비싸서 한 입만 먹고, 아이가 먹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들과 단 둘이 여행하면서 7살 아들이 그동안 많이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냥 아이로만 보아 왔는데,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힘든 일정을 잘 따라왔고, 새로운 것을 보고 체험하는 것을 즐겼다. 아내와 함께 할 때 찾을 수 없는 발견이었다. 아이가 새롭게 보였다. 이런 발견 덕분에 아빠라는 것이 주는 기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멋지게 자라고 있는 아이가 사랑스러웠고, 그런 아들을 더욱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아내 옆에서 적당히 아이들을 보살폈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육아에 있어서 아내라는 1인자가 없으니 2인자였던 내가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았다. 힘든 것도 있었지만 확실히 얻는 것도 많았다.


육아에 많이 참여한다고는 했지만, 그동안 아이의 육아에 있어 나는 언제나 “2인자”였다. 아이의 엄마라는 큰 산 뒤에 기대어 육아를 “도와주는” 것쯤으로 생각했다.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냉정하게 보면 나는 그랬다.) 아이를 오롯이 책임졌던 며칠간의 여행을 통해, 아이를 제대로 보려면 1인자의 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박명수라는 2인자가 유재석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더 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랄까? 나 또한 육아 2인자로서, 제대로 된 육아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 생각했다. 1인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오사카 여행 이후 아내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는 여행을 종종 하게 되었다. 어느새 둘째도 많이 커서 엄마 없이 남자 셋이서 다니는 여행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없이 여행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지속적으로 나를 놀래켰다. 덕분에 아이들도 나도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휴직을 하고 욕심이 생겼다. 70일이라는 기간 동안 아이들을 차지해보고 싶었다. 조금 더 길게 아내라는 1인자의 품에 벗어나 아이들을 “독점”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았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말이다.



아이들과 떠나는 여행이 내 인생에 새로운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4년 전 오사카 여행은 나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되었다. 큰아이와, 둘만의 오사카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블로그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사진으로만 여행을 남기는 게 아쉬웠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로 여행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날 이후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리고 블로그라는 잔잔한 물결은 나의 생활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블로그를 통해 아이와의 경험만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회사와 집만을 오갔던 나의 지루한 삶에 블로그는 하나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내가 휴직을 하는 데에는 블로그가 큰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돌아보게 했고, 새로운 것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였는지 이번 여행이 끝나면 ‘블로그’처럼 내 인생의 새로운 것이 튀어나올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됐다. 여행을 통해 나도 자라면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교육학자 최재정 교수의 <엄마도 학부모는 처음이야>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엄마에게만 국한된 책 제목이 불만이긴 했지만 학부모가 처음인 아빠에게도 이 책의 가치는 유효했다. 작가는 아이들을 키우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아이의 내재적 가치를 발견하는 일을 꼽는다.


“교육, education이라는 단어 안에는 라틴어 ducare(이끈다)라는 동사가 숨어 있다. 앞에 붙은 e는 ‘~로부터 밖으로’의 의미다. 즉 교육이란 아이의 밖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넣는 일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끌어내는 행위다 <엄마도 학부모는 처음이야 p.48>”


아이들의 내재적 가치를 밖으로 끌어내는 데 가장 좋은 교육의 장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아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잘 보여줬다. 특히 엄마가 없는 여행에서 더욱 그랬다. 엄마가 없다는 게 아이들을 더 강하게 한 것도 같았다. 엄마가 없었기에 아이들이 더 독립적으로 일을 해쳐 나갔다. 나 혼자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아빠로서, 발견하기 쉬웠던 것도 있었던 듯 했다.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자신들만의 가치를 잘 발현해내고, 그것을 아빠인 내가 하나씩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성장에 자극 받고 아빠인 나도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래저래 아이들과 나에게 이번 여행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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