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아내에게.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시차 때문에 첫날 새벽에 힘들어 하던 아이들은 이틀 만에 시차를 완벽히 극복했다. 시차에 있어서는 아빠보다 아이들이 훨씬 나았다. 동네 산책도 하고 집 앞에서 공놀이도 하며 지리도 익히고 몸도 풀었다. 나 또한 슬슬 이곳에 적응했다. 걱정만 하던 요리도 하나씩 했다. 요리는 생각보다 쉬웠다. 인터넷에 나온 레시피 대로 하면 그런대로 맛이 나왔다. 이런 걸 그동안 두렵다는 이유로 안하고 있었으니,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기대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맛있게 잘 먹어 주었다. 아이들이 잘 먹는 걸 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어머니도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겠지?”
캐나다에 오기 전 김민식 피디의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가 겪은 다양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을 임하는 나의 자세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이야기 중 아이들과 함께 했던 여행 이야기에 유독 관심이 갔다. 김민식 피디는 아이들과의 여행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마주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아이들과의 캐나다 여행을 앞 둔 나로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 올리기 충분한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됐다. 덕분에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삭힐 수도 있었다.
책을 통해, 아내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출산도, 생리도 대신할 수 없는 남편들에게 ‘전담 육아 휴가’를 권합니다. 여름휴가 동안 아내는 친구들과 놀러 가라고 등 떠밀고 혼자 아이를 데리고 놀아주세요. 가족 나들이는 엄마에게 육아의 연장, 살림의 연장이에요. 온전히 혼자만의 휴가를 보내게 해주세요. 아내와 아이들에게 동시에 점수를 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김민식,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전담 육아 휴가를 통해 아내에게 휴가를 보내주라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나의 여행이, 아내에게는 선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아내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아이들이 없는 70일이 아내에게는 자유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을 하면서 아내에게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를 믿어주고 휴직을 허락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 때문에 경제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 했기에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 아내가 이번 기회에 푹 쉬면서 충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고마운 것은 비단 휴직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는 항상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었다. 4년전부터 시작한 나의 블로그의 가장 열성적인 팬은 아내였다. 아내는 매일 나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며 피드백을 해준다. 꼼꼼히 읽고 해 준 피드백 덕분에 글쓰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쓸 수 있었다. 나의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에, 글쓰기의 기쁨을 알 수도 있었다.
아내를 보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내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많이 사랑했고, 나의 도전을 항상 응원했다. 아내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매력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나를 수시로 일깨워주는 인생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맨 처음 아내와 싸우던 날, 아내는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지, 첫번째 부부싸움을 통해 아내에게 배울 수 있었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내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는 무리없이 잘 자라주었지만, 회사가 문제였다. 아내는 당시 회사에서 사람을 관리하던 일을 했다. 임신 초기에 인사 제도가 바뀌면서 이런 저런 "잡일"들이 쏟아졌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했다. 물론 당시에도 임산부는 야근을 하면 안됐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내는 나와 달리(?) 책임감이 강했으니까!
아내가 야근을 할 때마다 내 속이 타들어가기도 했다. 첫 아이였던 지라 예민했다. 혹시 애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다. 그리고 아내의 야근에 예민해져있던 나는, 순간 아내에게 "욱"하고 말았다.
그날도 아내가 야근을 하다 늦게 퇴근 했다. 늦게 오는 상황에 짜증이 났는데, 아내가 택시가 아닌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는 이야기에 폭발하고 말았다. 집과 회사의 거리가 20분밖에 안되어 버스나, 택시나 큰 차이가 없긴 했지만 몸 생각하지 않는 아내가 야속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그것도 임산부에게, 왜 그러냐며 언성을 높였다.
아내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서운했던 것 같다. 야근한 것도 속상했는데, 남편마저 그렇게 이야길 했으니. 서운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는 나에게 진지하게 한 마디를 건넸다.
"삼십 먹은 동물은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아. 내가 당신의 습관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도 나의 습관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내는 오랫동안 검소하게 살았던 터라, 택시를 타는 게 부자연스러웠고 그런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강조하는 내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데 머리에 망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의 기준으로 아내를 바라보려 했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이미 오랫동안 그녀의 습관으로 자리잡은 "택시 안타기"를 매일 택시를 즐기는, 내 기준으로 바라본 것 같아 창피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절대 아내에게 나의 기준으로 아내의 습관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게 되었다. 아내도 마찬가지로 나의 습관을 터치하지 않았고.
아내는 나에게 불만이 있을 때, 나에게 바뀌라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나를 믿어주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서서히 바뀌어 가기도 했다. 그때의 이야기와 그 후의 아내의 행동은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바뀔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한결같이 행복하고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아내 덕분에 나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데 아내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올해 초 아내의 생일날 우연히 구본형 선생님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내에 대한 고마움 덕분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것도 오후에 사람도 많은 스타벅스 한 가운데서.
“지금까지 내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일이다. 결혼은 행운이었고, 글 쓰는 사람이 된 것은 우연히 찾아온 필연이었다. 인생의 길을 떠나 갈림길에 이를 때마다 현실의 이름으로 늘 무난한 차선의 길을 선택해온 평범한 남자가 고심하여 내린 두 번의 선택은 축복같은 최선이었다. 두 번의 최선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 길을 찾게 된 것 그리고 그 길을 힘껏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무릎을 꿇고 감사한다. <익숙한것과의 결별 개정판 서문, 나는 나를 혁명할 수 있다 중>”
아내와 결혼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아내를 만나서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지만, 더 큰 행운은 아내 덕분에 내가 많이 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항상 아내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다.
70일 동안 아이들과 캐나다로 떠나면서 아내와 헤어지는 게 아쉬웠고, 나 혼자만 아이들을 “독점”하는 게 미안했지만, 아내도 충분히 그 시간을 즐겼으면 했다. 아이들 없이 자기만을 위해 사는 70일이 되었으면 했다. 그게 내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