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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방법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참 잘 적응합니다.

by 최호진


“엄마, 나 캐나다 안 가면 안돼?”

“왜? 무슨 일 있어? 너도 가고 싶어 했잖아?”

“가고 싶기는 한데, 영어를 못해서, 걱정이야. 조금 무서워”

캐나다로 출발하기 며칠 전 일이었다. 자기 전, 일곱 살 둘째가 엄마에게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캐나다에 형과 간다고 처음 말했을 때 마냥 좋아했던 아이었는데, 막상 가려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에게 더 많이 칭찬해 달라고 아내는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아내도 걱정되긴 매한가지였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아내의 당부를 들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이가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가 자꾸 신경 쓰였다.

둘째가 두려워하는 마음은 당연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큰 아이와 달리 둘째 아이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그간 해외여행을 할 때도 나와 엄마, 형이 항상 함께 있어 주었기에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둘째 아이는 한 달 전쯤 부랴 부랴 ABC 책을 사서 알파벳을 익힌 게 고작이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가는 것도 아니었고 영어를 몰라도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캠프 담당자의 메일을 받았던 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이는 낯선 환경에 대한 설렘보다 두려움이 크게 다가온 듯 싶었다.

어른인 나도 무섭고 두려운데 아이는 오죽했으랴.

드디어 캠프 첫 날이 밝았다. 긴장이 됐는지 새벽에 눈이 떠졌다. 며칠 동안 새벽에 일어나려고 애를 써도 안됐는데 이날은 알람도 없이 아침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아침 도시락을 준비했다. 전날 연습까지 했던 삼각 주먹밥이 첫번째 도시락 메뉴다.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번 만들었던 주먹밥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아내의 훈수가 없으니 잘 안되는 듯 싶었다. 겨우 모양을 갖춘 주먹밥이 나왔다. 중간에 먹을 간식과 과일까지 챙겨 아이들을 위한 첫번째 도시락을 완성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 밥까지 먹여 아이들을 캠프에 바래다 주었다. 강당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아이들 클래스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큰 아들은 Active Gamers를, 작은 아들은 Soccer 클래스를 한 주 동안 듣는다. 큰 아들 수업은 컴퓨터 게임을 포함한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클래스였고, 작은 아들 것은 축구를 함께 하는 클래스였다. 중간 중간에 수영도 하고 다른 놀이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리더라 불리는 선생님께 아이들을 인계하면서 아이들이 영어를 잘 못해 걱정이라고,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활짝 웃으며 걱정 말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리더 선생님들 덕분에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했다.


우려와 달리 둘째는 씩씩했다. 엄마에게 영어 때문에 걱정이라며 응석 부렸던 아이의 모습은 아니었다. 씩씩한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둘째와 헤어지기 전, 아이에게 영어를 못해도 괜찮으니까 재미있게 놀라며 단어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그 때 알려준 게 bathroom이었다. 화장실만 잘 가면 된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외우게 했다. 화장실이 급할 때 말을 못해 실수하면 큰일나니까. 아이는 밝은 얼굴로 bathroom을 따라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딴 이야기지만 캐나다에서는 화장실을 가리킬 땐 bathroom보다는 washroom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캠프가 끝날 때쯤 아이들이 알려줘서 알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캐나다에서 본 간판도 대부분이washroom이라고 쓰여 있었다. 물론 bathroom이라고 해도 대충 알아 듣긴 하지만, 좀 더 실용적인 단어를 가르쳐주려면 washroom을 가르쳐 줬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기왕 알려줄 거면 제대로 된 단어를 알려 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아빠가 완벽하지 못해 미안해 아이들아.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한동안 강당에서 나오질 못했다. 멀리서 아이들을 계속 지켜봤다. 아이들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클래스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내가 긴장한 채 보아서 그런지 아이들 표정도 경직돼 보였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기 위해 각자 지정된 장소로 이동할 때가 되어서야 나도 겨우 강당에서 나올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 잘 할 수 있겠지?”

아이를 보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수요일에 도착해서 일요일까지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간만의 자유를 찾았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아이들이 잘 있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지만 커피숍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나름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오후 4시, 드디어 아이들과 만날 시간이 됐다.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일찍 도착한 터라 시간이 조금 남아 강당 앞에서 대기했다. 아이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울먹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그리고 드디어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선 둘째부터 찾았다. 둘째가 보였다. 둘째는 밝게 웃으며 친구와 놀고 있었다. 그 순간 안심이 되었다. 멀리서만 봐도 아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나를 발견한 둘째는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며 나에게 와락 안겼다. 큰 아이 표정도 밝았다. 하루 종일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영어를 잘 못해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노는 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둘째는 집에 오는 길에 친구를 사귀었다며 자랑을 했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는지 의아했다. 친구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이름은 잘 모른다고 했다. 이름도 모른 채 친구와 놀았던 걸까? 그래서 한 가지 더 물어봤다.


“지원이는 영어를 못하는데 어떻게 친구와 놀았어?”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둘째는 현명하게 답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 마자 아이들의 강인한 적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놀 때 이야기 하지 않고 놀아. 그냥 놀아”

아이들은 나의 걱정과 달리 씩씩했고, 캠프에 잘 적응했다. 아이들이 고마웠고, 새삼 크게 보였다.

아이의 발달은 회복력이 있습니다. 아이는 성장과 성숙을 추구하는 타고난 성향이 있으며, 특정 자극이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적인 힘, 즉 회복력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되는 일이나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현심, 첫 부모역할 중>

이날 나는 아이들의 적응력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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