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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내탓이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편안함을 얻고 싶었나보다.

by 최호진

https://brunch.co.kr/@tham2000/121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아이는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에 누웠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누군가가 와서 아들 체온과 심장 박동수, 혈압을 체크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 와서 똑같은 일을 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사람이 드나들며 아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 와중에 아들의 체온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의 체온은 38도가 넘었다. 배가 아프다는 아이에게 주말내내 괜찮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열이 나는지도 챙기지 않았었다. 열까지 나니 진짜 맹장염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다.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했다.


얼마 후 초음파 검사를 했다. 초음파 검사만 하면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발 아이가 맹장염이 아니기를 바랐다. 머나먼 타지에서 아이를 수술시키고 싶진 않았다. 초음파 검사까지 다 하고, 또 얼마를 기다린 후 오후 3시가 다 되어서야 의사를 만났다. 그리고 의사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 나에게 안내해주었다.


“ 초음파 상으로는 맹장염으로 나오진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의 아픈 상태나 백혈구 수치 등을 종합해서 봤을 때 맹장염이 맞아요. 그런데, 아이가 어려서 이 병원에서는 수술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옮겨서 정확히 진단하고 수술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기뻤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만 들으려고 한다던데, 의사가 초음파상으로 맹장염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우선 내 귀에 들렸다. 동네 병원의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나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좋았다. 하지만 그 다음 이야기에 맥이 빠졌다. 자기네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으니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가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분이 나빴다. 처음부터 어린이 전문 병원으로 가라고 이야기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욕이 나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되는 영어로 화를 내 봤자, 나만 손해였다. 병원에서는 환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으니.


그런데, 더 당황스러웠던 일이 발생했다. 어린이 전문병원으로 가기 위해 앰뷸런스를 타야 하는데, 앱뷸런스를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냥 내가 데리고 가면 위험할 수 있어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이미 수액을 맞고 있었고 진통제 주사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도 진통제를 맞은 아들은 약에 취한 건지 잠을 계속 잤다. 자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빨리 앰뷸런스가 오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5시가 넘어서야 아들은 어린이 병원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어린이 병원 응급실에서도 한참 누워 있었다. 간호사 몇 명이 왔다 갔다 했고, 인턴, 레지턴트들이 한명씩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의사로부터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맹장염이 맞다고 했다. 초음파상으로 맹장염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곪아버렸던 맹장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요일에 아이의 배가 부글부글 끓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 아이의 맹장이 터져 버린 것 같았다. 그것도 모르고 가스가 나오는 신호라고 좋아라 했고 방귀나 열심히 뀌라고 했다. 무식한 아빠 때문에 아이가 고생한 걸 생각하니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맹장염이 아닐 것이라는 나의 일말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담담했다. 하루 종일 기다려서 지쳐서 그랬을까?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까?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끝나면 아이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빨리 수술을 받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수술도 내맘대로 곧장 할 수 없었다. 맹장이 터져버려 뱃속에 균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 당장 수술하기 곤란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우선 항생제로 균을 가라 앉히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다음날로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이야기가 틀린 말 같지는 않았지만 수술을 당장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항생제만 투약한 채 아들과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말이다. 아침 9시에 동네 클리닉에 간 걸로 시작해서 14시간 동안 진통제와 항생제 그리고 수액을 맞고 수술도 못하고 병실로 아들과 함께 올라가야 했다.

아이는 진통제와 항생제의 여파로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병실로 올리와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이를 따라 다니며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있었다. 보호자 휴게실로 가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데서부터 올라왔다. 눈물이 났다. 한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났다.


아이가 어쩌다 맹장염에 걸렸을까? 혹시 내가 한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머리카락을 먹으면 맹장염에 걸린다는 속설이 있던데, 내가 요리하는 사이에 머리카락이 떨어졌던 걸까?


생각은 이상한 데로 흘러갔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그것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벌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휴직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괜히 새로운 것을 찾아보겠다고 휴직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늘에서 나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이 나왔다.


“모든 게 다 내 탓이었다”


괴로웠다. 아이가 아픈 이유가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계속 나왔다. 병원에 누워있는 큰애에게도, 고모네에서 혼자 있는 둘째에게도, 멀리서 혼자 애태우고 있을 아내에게도 다 미안했다. 나 때문에 다들 고생하는 것 같았다.


<엄마심리수업>에서는 엄마가 죄책감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역설적으로도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책의 저자는 이야기한다.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죄책감이 사실은 엄마를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 앞뒤가 안 맞는게 무의식의 속성이다. (중략) 엄마의 의식은 죄책감으로 괴로움을 겪지만 무의식에서는 마음이 편해진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중략) 엄마의 죄책감은 자기 위안이다.“


서울로 돌아와 문득 이 책을 읽다가 아이가 입원한 날 밤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때 내가 자책했던 것이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라도 위로 받고 편안해지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고 무서웠다. 모든 걸 내 탓이라고 돌리니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머나먼 캐나다에서 하루 종일 세 군데 병원을 돌고 입원한 아이를 보며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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