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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Nov 27. 2019

[휴직일기] 모든 것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

적당한 때를 잘 잡는 사람은 오늘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진인사대천명


지난 월요일, 걷기 모임을 몇 달 째 함께 하신 분을 강남역에서 만났다. 멀리 전라도 광주에서 오신 분이었기에 (물론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더 반갑게 느껴졌다. 한참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녀는 (맞다, 여자 분이셨기에 한참동안 수다가 가능하기도 했다) 몇 달간의 걷기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매일 쓰는 블로그 글을 열심히 보고 있다며 많이 배울 수 있어 고맙다고 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분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기쁘기도 했지만, 내가 그런 인사를 받아도 될만한 사람인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한참 이야기를 주고 받는 중에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최근 "운"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녀는 운에 관련한 책을 읽으며 모든 일에는 적당한 때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사업을 할 때에는 하는 일마다 좋은 성과가 나와서 우쭐하곤 했었는데 지난 5년동안에는 하는 일마다 안되는 바람에 마음 고생을 했다고 했다. 그런 일련의 일을 겪고, 최근 "운"과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했다.


모든 일에 적당한 때가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기는 했지만 선뜻 동의할 수는 없었다.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에는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이 결여되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때를 잘 만나기만 한다면 그다지 노력을 안해도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때를 기다리는 것에 핵심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준비된 자만이 주어진 밥상도 잘 먹을 수 있다며, 최선을 다해야 때가 왔을 때도 그 기회를 잘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때가 아무리 와도 그 운을 살릴 수 없다며.


그녀와의 신나는 수다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운"에 대해 물어봤다. 아내 또한 "운"을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운"은 영어로 fortune에 가까운 말이라고 했다. 운명에 가까운 말로 어떤 일이 되려는 "기운"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단순한 행운을 의미하는 luck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라고 했다.


아내의 설명까지 들으니 "운"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조금 걷히는 것 같았다. 문득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할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에서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이, 적당한 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자신의 할 일을 다해야 한다"라는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희 출판사와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

"운"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려 했고, 또 골똘히 생각했던 것은 최근 내가 하는 일들이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휴직을 하면 뭐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된 결과물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조금만 손을 뻗으면 될 것 같은데, 몇 센티미터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겪으면서 나 스스로 자책도 했다. 좀 더 노력해야 된다고 채찍질도 했다. 적당한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그걸 인정하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가. 빨리 뭐라도 만들고 싶었다.


책을 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휴직을 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책을 내는 일이었다. 글을 쓰는 일이 좋기도 했지만 책을 쓰고 나면 뭔가 인생이 크게 바뀔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게 있었다. 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베스트 셀러가 되어서 서점을 돌아다니며 싸인회를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 몇 천만원의 인세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강의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새로운 파이프라인은 꽂을 수 있다고 혼자서 좋아하기도 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캐나다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런 저런 것을 많이 배웠고 그것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지 술술 글이 써졌다. 미친듯이 초고를 썼다. 하루에 한꼭지씩 썼으니 50일도 채 안되서 초고를 완성한 셈이었다. (퀄리티는 잘 모르겠지만..) 몇 개 꼭지는 브런치를 통해 발행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뭔가 잘 될 징조라 생각했다.  그리고 3주 전부터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출판사 하나 하나에 개별로 메일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온 메일은 거절 메일이 전부였다.


"소중한 원고,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저희 출판사의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


거절 메일은 그나마 감사했다. 아예 답이 없는 출판사도 많았다.  아직 검토중일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실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아쉬웠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했고, 내가 만든 "작품"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소중한 글이 책으로 빛을 보지 못할까봐 걱정이되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그렇게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책을 낼 타이밍이 아직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고.


하지만 내가 할 일을 다하고 때를 기다린다라고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한다면 내가 진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보였다. 감나무의 감이 떨어지기를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떨어질 때 나름 잘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했다. 진짜 책으로 내고 싶다면 내가 쓴 것을 열심히 고치는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것이 훨씬 힘들고 귀찮다)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뭔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다보면 좋은 때가 올 것이니까.


될일은 된다

올해 초 <될일은 된다>라는 책을 읽었다. 책 제목이 별로였다. "운"에 대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될일은 알아서 된다는 것 같다는 뉘앙스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정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 강조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자세였다. 개인의 호불호를 내려놓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전력투구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작가는 이야기 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내 앞에 놓인 모든 일을 개인적인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가슴과 영혼을 다해 최선을 다한다. (p217)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라고 이야기 했던 스피노자처럼 어떤 상황에도 묵묵히 내 갈길을 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좋은 결과물로 나오든 그렇지 않든 내 일을 묵묵히 하며 때를 기다리며 칼을 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여전히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내 스스로가 영글때까지 더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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