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남을 의식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쓰지 말까?
어제 블로그 글을 쓰다 글쓰는 일에 회의감을 느꼈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발행하겠다는 신년 목표를 열흘도 안돼 포기해야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글은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글이 나갔다. 개요를 제대로 안 쓰고, 나의 생각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글을 쓴 탓도 있었다. 머릿속이 정리가 안되니 글도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 글을 발행했다가 망신만 당할 게 뻔했다.
매일 글을 발행하겠다고 약속하고 올해를 맞이했던 터라, 게다가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 어쩔 수 없이 글을 발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불만이 가득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이 제대로 담긴 글은 아니었다. 나름 좋은 책을 읽고 저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쓴 글이었는데, 저자에게 너무 미안했다.
https://blog.naver.com/tham2000/221763116679
창피함을 무릅쓰고 "발행"버튼을 누르고 한참동안 글쓰기에 대한 나의 문제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비단 어제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더 심각했다. 최근 들어 내 글이 이상해지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부자연스러워진 게 느껴졌다. 매일 글을 올리겠다고 생각했던 게 잘못된 것일까? 더이상 내 안에 쓸만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말에 작년에 쓴 글을 보면서 한 해를 회고하다보니 생각보다 좋은 글들이 눈에 띄었다. 자뻑같지만 몇 개월 지나 읽으니, 내가 쓴 글이 꽤나 감동적이었다. 내가 이런 멋진 생각을 하다니 놀라웠다. 진심을 꾹꾹 담은 글 하나 하나에 진정성도 보였다. 사람들이 왜 나의 글을 좋다고 했는지, 이해됐다. 한참 글쓰기에 물이 올랐을 땐 내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때와 지금, 나는 무엇이 달라져 있던 걸까? 도대체 요즘 나의 글쓰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최근 만난 블로그 이웃들이 떠올랐다. 온라인 상으로 알게된 이웃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개별적으로 만나며 이런 저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처럼 아이 둘을 키우는 아버지들도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블로그를 시작하신 분도 있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온갖 찬사를 퍼부어 주었다. 내 글을 읽고 매일 감동하고 있다고도 했고, 덕분에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도 하셨다. 물론 그 앞에서는 손사레를 치며 내가 그런 깜냥이 안된다고 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문제점을 짚다보니 거기서 내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취해 있던 것이다. 나의 글을 읽고 좋다고 칭찬해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멘토라고 불러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글에 은연중에 아니 대놓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뭔가 대단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압박감에, 내 마음을 드러낸 글보다는 남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회수도 나의 주된 관심사였다. 한 때 글이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브런치의 유명 작가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음 메인에도 걸리고, 추천 글에도 떴다. 쓰기만 하면 1천 조회수가 나오곤 했었다. 내가 쓴 글을 남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은 것이지만 문제는 내가 어느 순간부터 브런치 조회수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꾸 주변부에 집중하게 됐다. 자극적인 제목을 뽑고, 선정적인 서론으로 시작하며 최대한 브런치 팀의 pick을 받기 위해 애를 썼다. 내용은 그닥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조회수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본말이 바뀐 글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어느 순간부터 남을 의식하는 글쓰기로 바뀌어 있었다. 나의 글을 봐주러 오는 독자들이 너무 감사했지만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 글을 써보겠다고 내 스타일과 맞지 않게 글을 정리했던 것도 있었다. 휴직을 하고 1년 정도 지나면서 남의 인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탈피했다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가 문제였다.
물론, 그렇다고 자학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게 자책하고 싶어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는 게 필요했다.다행히 요 며칠 선배와 대화를 나누고, 독서 토론에서 대화를 나눈 것에 내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 지 눈에 보였다.
키워드는 "작은 성취"다. 어제 만난 선배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작은 것에 성취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라며 문장 하나에 만족하고 글을 쓰고 났을 때 즐거운 마음을 갖는 사람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즐기며 글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실력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했다. 몰입도 마찬가지다. 깊은 몰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작은 몰입의 성공 경험이 필요했다.
결국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 아주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작은 성취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문장 하나에 혼자 감격하기도 하고, 좋은 인용문구를 찾았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것, 그런 자뻑같은 감정을 느끼며 즐겁게 글을 쓰는 게 중요한 것일 듯 싶었다. 자연스러운 게 당연히 좋겠지만 당분간은 의식적인 연습과 노력이 필요할 듯 싶었다. 그렇다고 곧장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운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조금 더 재미를 느끼며 행복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쓸 때 더 내 생각이 잘 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제니스 캐플런의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이라는 책에서는 기억하는 자아와 경험하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일한 일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경험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달라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한라산을 등산하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힘든 일로 기억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동일한 경험이라도 어떻게 우리가 남기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나의 글쓰기에 대한 기억자아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고통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어떤 기억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볼 시점인 듯 싶었다. 힘들어서 겨우 겨우 쓰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할 듯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주는 칭찬이 아닌, 조회수가 아닌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하는 글을 쓰고 있는지 다시금 점검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다시 글을 쓰며 행복한 삶으로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