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호진 Jan 28. 2020

[휴직일기] 힘을 빼야 더 잘 나갑니다.

팔치기를 배우며 힘빼는 법을 배웠습니다.

팔치기를 아시나요?


마라톤을 하면서, 새로운 용어를 접하게 됐다. 먼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콩글리시 느낌의 LSD(Long slow distance)란 용어도,  체내에 탄수화물을 더 많이 쌓는 식이요법인 카보로딩이라는 말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는데, 어느새 내게 익숙한 밀들이 되어 버렸다.


"팔치기"라는 말도 마라톤을 하며 처음 배웠다. 이 말은 팔을 앞뒤로 흔드는 동작을 의미하는데, 마라톤에서 중요한 동작이라고 한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몸의 반동을 이끌어 내는 것은 지치지 않고 쭉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팔치기를 하는데 꼭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었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팔을 앞뒤로 흔들어야 나가는 힘을 더 얻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운동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수영이었다. 수영에서도 몸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몸에 힘을 잔뜩 주면 줄수록 물의 저항을 더 많이 받게 된다.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쭉 나가기 위해서 몸에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 팔치기건, 수영이건 제대로 나가기 위해서 오히려 힘을 빼는 게 중요했다. 물론 팔치기를 할 때고, 수영을 할 때고 몸에 힘을 빼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만 말이다.


역설같이 들리지만 힘을 빼야 더 잘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지난 1년간의 나의 휴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휴직을 시작하고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던 시간들, 그리고 어느 정도 힘을 조절할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1년 동안 몸에 힘을 빼는 법을 조금씩 익힐 수 있었다. 연초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또 1년 전의 나처럼 휴직을 시작하고 이것 저것 해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힘을 빼는 과정, 네 단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한다.  


몸에 힘을 빼는 법을 배웠던 1년의 과정


1. 힘이 잔뜩 들어가는 시기 : 견뎌야 한다.



다 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1년의 휴직이 후회가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즐거운 휴직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직 1달도 체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재미는 온데간데 없고 의무감과 압박감만이 저를 옥죄고 있었습니다.

휴직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이웃 블로거의 글을 읽게 되었다. 즐거운 휴직이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다가온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나는 의무감과 압박감을 넘어 비장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휴직이 끝날 때쯤 당당하게 사직서를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름의 배수진을 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온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런 마음이 꼭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이런 비장한 마음은 오히려 많은 경험을 하는 토대가 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에 일어났고, 매일 달리기를 했으며 매일 장문의 글을 남겼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잠을 덜 잤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영락없이 내가 그런 꼴이었다. 물론 힘에 부치는 날도 많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사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 견딤의 시간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 속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이 크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무언가를 도전하고자 한다면 처음의 고생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견뎌냄의 시간이 있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도 하고. 


2. 계기는 반드시 온다. :  잘 포착하라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분이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 씻고 책을 읽고, 유튜브 촬영을 하고, 수영을 하는 게 그의 새벽 루틴이었다. 그렇게 미친듯이 몇 달을 지낸 그에게 찾아온 것은 고열을 동반한 감기였다. 며칠동안 끙끙 앓아야 했다.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자신에게 독이 된다는 몸의 신호를 그는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그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조금 더 여유있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계기가 여러번 있었다. 감기에 걸려 고생한 일도 나름의 계기였지만 가장 큰 사건은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일이었다. 여러번 언급했다시피, 큰아들은 캐나다에서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기계발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나를 잡아준 것은 아들이었다. "더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고 담담히 이야기 하는 아이의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굳이 많은 것을 하려하지 않더라도, 좋은 일이 생길것이라고 믿는 그 마음이라면 충분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하며 지낼 수 있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오직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의 내려놓음의 계기였고 시작이었다. 


이런 계기는 누구나 도전을 하는 과정에 맞닥뜨린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계기가 되는 신호를 잘 포착하느냐이다. 몸이 주는 신호든, 아이가 주는 신호든 그것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내려놓고 힘을 뺄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3.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 이틀을 만들어라. : 돌이켜봐라


깨달음의 계기가 왔다면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단 하루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시간동안 멍을 때리면서 지내는 것을 통해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할 수 있다. 


나에게 그런 시간은 지난 10월 제주도 여행이었다. 아이들과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와서 아내에게 포상휴가처럼 3박 4일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제주도로 훌쩍 다녀왔다. 그곳에서의 가장 큰 목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멍하니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기만 하기도 하고, 숙소에 있는 TV를 보고 있기도 했다. 늦잠은 필수였다. 게으르게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하루 이틀의 휴식은 내가 진짜 잡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의 마음을 생각해 보기도 했고,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따져보기도 했다. 이런 며칠간의 휴식을 통해서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깨달음의 계기가 왔다면 단 하루가 아니더라도 몇 시간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몇 시간을 통해 힘을 빼는 게 무엇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4.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를 만들어라 : 물고 늘어져라


팔치기를 할 때 어깨에 힘을 빼는 이유 중 하나는, 진짜 필요한 곳에 힘을 쏟기 위함이다. 달리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허벅지에 집중함으로써 진짜 필요한 근육을 활용하는 것이다. 휴직기간 동안 힘을 빼는 이유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내가 힘을 쏟아야 할 곳에 제대로 힘을 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힘을 빼는 연습을 했다면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내가 진짜 집중해야 할 곳을 찾는 일이다. 포기할 수 없는 단 한가지를 찾아내고 거기에 힘을 잘 쏟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 곳에 힘을 쏟아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된다.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글을 써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쓰기를 붙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글쓰는 게 나에게 주는 기쁨이 있었기에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바뀌는 게 느껴졌기에 그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벽기상을 포기하더라도, 사람들을 덜 만나더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은 매일 매일 글쓰기였다. 그것 외에는 굳이 다른 것에는 마음을 놓아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마인드 맵 그리기를 자신이 해야 할 단 한가지로 잡는 분도 있으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이런 저런 곳에 기웃거렸지만 마인드 맵만큼 자신에게 맞는 것도,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쉬운 것도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꼭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마인드 맵이 아니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하나를 찾아서 거기에 힘을 쏟는 것이 쓸데 없는 곳에는 힘을 빼게 만들 수 있다. 




휴직을 하면서, 이런 저런 도전을 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이런 나의 휴직을 지지하고 지원한 아내가 있었기에 나 또한 선뜻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도전에서 항상 무언가를 해내야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나를 믿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압박감 속에서 ,나는 유연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견딤의 시간을 지나서, 계기를 포착하고,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지면서 진짜 내가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조금씩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을 빼고 달리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 속에서 많은 압박감을 느끼는 분들이 지금의 압박감에 대해서 너무 부정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분명 그 속에서 얻는 것들이 있고 압박감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면서 나처럼 점점 힘을 빼는 법을 알 수 있는 시간들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 압박감이 무겁다면 그저 견뎌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