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씨 인터뷰를 보며, 나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기로 했다.
작년말,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인상깊게 읽었다. 평균 72세 어른들의 인터뷰가 꽤나 재미있었다. 그들의 인터뷰를 통해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 진정한 나다움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책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싶어, 일부러 천천히 읽기도 했다.
책을 읽다보니 72세의 어른들 외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들을 인터뷰한 작가, 김지수 님이었다. 인터뷰 대상자의 입에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뽑아내는 작가의 인터뷰 기술(?)이 실로 대단해보였다. 자연스레 관심은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로 이어졌다. 이 책이 조선비즈에 매주 토요일마다 연재한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중 일부를 모아 발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일, 주옥같은 인터뷰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의 인터뷰 대상자는 "백종원"씨였다. 최근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을 통해 단순한 요리사업가가 아닌 인생컨설턴트로, 사회사업가로 거듭난 그의 이야기가 이번 인터뷰에 담겨 있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1/2020020100268.html
-골목에 사람이 몰리고, 버려지던 농산물에 길이 열리고, 토종 레시피로 식탁이 산뜻해졌어요. 방송대상이 아니라 노벨평화상 감이라는 농담도 들려요(웃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는 저한테 도움 되는 일을 해요. 저도 바보가 아닌데요… 하하. 다만 좀 멀리 봐요. 어떤 일들은 내가 은퇴하고 나서 좋아질 일들이죠. 먼 후일을 바라보니까 눈앞에 욕심은 안내요. 백종원이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린다? 아녜요. 그리다 보면 이거 잘하면 호랑이도 되겠네, 감이 오는 정도죠."
<인터뷰 중 일부>
김지수 작가의 백종원 씨 인터뷰는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의 선행에 대한 이야기였다. 베푸는 행동에 대한 질문에, 백종원씨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일을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신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좀 더 멀리 바라본다고 했다.
인터뷰를 읽다보니 애덤 그랜트의 <Give & Take>가 떠올랐다.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기버(giver)의 삶을 백종원 씨가 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애덤 그랜트의 <Give & Take>에서는 진정한 기버와 호구를 구별했다. 호구는 남에게 주기만한 사람이었지만, 진정한 기버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면서도 자기 자신의 이익 또한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덕분에 에너지를 유지하는 성공하는 기버가 실패한 기버보다 더 많이 베푼다. (중략) 성공한 기버는 실패한 기버보다 덜 이타적인 것일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소진한 에너지를 회복하는 능력 덕분에 세상에 더 많이 공헌한다. <애덤그랜트, 기브앤테이크 301p>
책의 이야기와 오버랩되면서, 남들에게 주는 삶을 사는 것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종원님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기버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할 수 있었다.
휴직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 밖 세상 사람들이 신기했다. 나처럼 한 회사만 주구장창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각자의 커리어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두고 있었다. 단지 신기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한 분 한 분 배울 점이 있었다.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서 그들과 만났고 그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하며 지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휴직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도, 캐나다에서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 분도, 매일 글을 쓰는 마음을 알고 싶어하는 분도 있었다. 만나자고 연락을 주는 사람들은 무조건 만났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 속에서 배웠던 것을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 속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시켰다.
지난 월요일에는 의정부에서 일을 마치고, 홍대까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나의 블로그 글을 보며 나를 롤모델로 삼는다는 분이셨다. 신나게 대화를 나눴다. 내 일상과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리고 몇개의 질문을 던지며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그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도 있었다. 신나게 몇 시간을 떠들었다.
몇 시간의 “수다”를 떨고 헤어질 때 그는 나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괜히 호진님의 소중한 시간을 뺏은 것 같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더 미안했다. 몇 시간 동안의 대화가 나에게도 충분히 도움이 됐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그에게 배웠던 것이 많았다. 그의 인생사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정리하기도 했다. 또한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점을 궁금해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됐고.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는데, 그가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베푸는 척 하고 있지만, 나 또한 어떤 행동을 하든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의 만남도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원래부터 착한 놈이 어딨어요(웃음)? 제가 사실 입도 거칠어요. 그런데 방송하려니 도리가 없어요. 겸손한 척, 착한 척, 순화해야지. 방송에서 하던 대로 밖에서도 말하니, 처음엔 직원들이 "어디 아픈가?"했대요(웃음). 참 이상한 게, 사람들이 저의 ‘척'을 진심으로 받아주니까, 자꾸 ‘이런 척' ‘저런 척' 더 하고 싶어져요. 그렇게 출연료, 광고료 여기저기 기부도 하면서 마음 부자가 돼가요. 저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점점 ‘척'대로 되어가요(웃음)."
<인터뷰 중 일부>
백종원씨의 인터뷰 중에 그의 "척"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착한척, 순한척, 겸손한척하면서 점점 '척'대로 되어간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의 삶의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척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이기적인 나이지만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눠 주면서 기버인척하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다보면 진짜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이고, 호구가 되지 않고 진정한 기버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