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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Jan 22. 2020

꼰대라고 불리는 게 무서워서...

20대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들었던 단상


40 되어서, 20대들과 만나게 되다.


올해 1월부터, 20대 두 분과 정기적인 독서모임을 갖게 되었다. 두 분을 알게 된 것은 블로그 덕분이었다. 내가 5월에 쓴 독서모임과 관련한 블로그 글에 한 분이 댓글을 다셨고, 둘이라도 소소하게 독서모임을 해보자는 적극적인 이야기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분을 우선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 다른 한 분이 동행하셔서 셋이 보게 됐다.


신도림의 스타벅스에서 가볍게 만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대 휴학생이라고 소개한 두 분은, 흔히 말하는 요즘의 20대와는 사뭇 달랐다. 읽는 책은 주로 자기계발서였으며, 유튜브를 보고 각종 강연을 쫓아다니며 "성장"하려고 노력했다. 열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났지만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많았다. 20대들과 소통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격주로 목요일에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독서모임은 시작됐다.


지난 목요일, 첫번째 모임이 사당역 스터디카페에서 있었다. 서로의 일상에 대해 간략히 공유하고, 각자 읽은 책에서 인상깊은 구절을 꺼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에고라는 적>을, 두 분은 각각 <백만장자 시크릿>과 <린치핀>을 들고 나왔다. 각자가 읽었던 책의 주요 부분을 이야기하며 지적인 대화를 나눴다. 그들이 들고온 책을 보면서 확실히 두 분이, 내가 생각했던 요즘의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요즘 20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갔다. 사업을 준비하는 두 친구는 나보다더 요즘의 20대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대기업을 취직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안타깝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의 강한 주장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분의 이야기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20대들이 안정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것을 추구했던 나의 20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비판보다는 그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가지는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말았다.


내가 꼰대였나?


독서 모임이 끝나고, 그들과 헤어진 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한 게 "꼰대"짓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자기 주장을 강하게 이야기 하며 "라떼는 말이야"라고 말하는 꼰대와 내가 주장했던 모습이 크게 다르지도 않을 수 있었겠다는 자기검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그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가 오늘은 조금 공격적이었는데, 불편하신건 아니었나 모르겠네요"


사과인듯 사과아닌 애매한 문자를 보내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주장이 20대 친구들에게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라도 나의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꾸 뭔가 찜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한 짓이 꼰대라고 비난받을만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꼰대라고 불리기 싫다는 이유로, 내가 생각한 것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들 앞에서 자기 주장을 할 때 조심해야 할 포인트는 많겠지만, 그렇다고 내 주장을 숨기고 조용히 있는게 미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주장을 숨기기 보다는, 나의 주장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잘"하는 포인트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해 봤다. 내가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불편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자기 주장에 대한 과도한 확신, 그게 문제였다. 자기 주장에 대해 강하게 어필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생을 덜 살아서 모른다는 둥, 내가 살아봐서 안다는 둥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는 게 나는 싫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자신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진리"라고 이야기할 때 나는 상대편의 이야기가 주장이 아니라 강요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20대들에게 꼰대라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런 류가 아니었을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이 내가 주장하는 바탕에 깔려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지만, 그래서 확실하지 않지만 내 생각이 이렇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나의 주장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참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요즘 나의 화두는 “나이듦”이다. 아직 한창 때이지만 삼십대에서 사십대로 넘어가는 요즘, 어떻게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연초, 아내의 추천으로 이근후 박사의 <백살까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을 읽게 되었다. 90이 가까운 나이에 쓴 그의 이야기에서 진정한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는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그 속에서 조심하며 지내기 보다는 나다움을 찾아가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나이들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잦아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만난 20대들 덕분에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꼭 내 생각을 숨기면서 지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게 더 필요해 보였다.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까 무섭지만, 그래도 그것이 나답게 나이드는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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