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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Feb 28. 2020

캐나다 국경을 자동차로 넘어가다

캐나다에서 오해를 받은 일

자동차로 미국을 가다


위니펙에서 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미국의 노스다코다 주의 그랜드포크스라는 곳이 나온다. 그랜드포크스는 노스다코다 주에 있는 조그만 도시인데 위니펙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미국의 미네소타를 가기 위해 이곳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랜드포크스에서 위니펙 한인들이 즐겨 찾는 숙소가 하나 있다. 캐나다인(Canada Inn)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에 딸린 워터파크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그랜드포크스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워터파크라면 “환장”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가서 재미있게 놀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국경을 자동차로 넘어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물놀이도 즐기고, 진귀한 경험도 하고 일석이조의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미국은 그리 멀지 않았다. 위니펙에서 1시간 조금 넘게 차를 몰고 가니 금세 미국과 캐나다의 접경 지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입국 심사 구역이 보였다. 경계선 한 가운데 건물이 있었고, 그 사이 사이에 톨게이트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이 있었다. 우리는 톨게이트처럼 생긴 곳에 차를 대고 담당 직원에게 차 안에서 심사를 받았다. 짧게 끝날 줄 알았지만 우리의 예상은 역시나 쉽게 빗나갔다. 담당직원은 우리의 여권을 뺏더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안내했다.



순간 긴장됐다. 다시 돌아가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 들어갈 때마다, 그리고 입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늘 경직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그랬다. 그렇다고 입국을 거절 당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역시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담당자는 나의 사진과 지문을 찍은 후 가볍게 통과시켜 주었다. 시간을 지체한 게 아쉽기는 했지만 외국인 신분의 여행자로서 어쩔 수 없었다.

 

미국 땅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도로는 똑같았다. 표지판의 숫자를 보고 헷갈린 게 해프팅이라면 해프닝이었다. 제한 속도 65라는 표지판을 봤다. 너무 천천히 가야 하는 것 같아 의아하긴 했지만, 속도 위반으로 문제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에 조심히 달렸다. 그런데 다른 차들은 너무 쌩쌩 달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참 후에 미국은 km가 아니라 mile을 단위로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나 또한 65마일의 기준에 맞춰 달릴 수 있었다.


약간의 어리석은 짓을 하고 숙소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놀았다. 짧은 1박 2일의 일정이었기에 1분 1초를 아껴가며 놀았다. 다음날 호텔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에너지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고무되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나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의 동의서가 필요하다고요?


짧은 여행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캐나다로 다시 향했다. 하지만 캐나다로 들어가면서 입국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캐나다에서 잠시 미국을 갔다 온 것이라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한 질문을 받고 일이 꼬여 버렸다.


 “너 혼자 아이들 데리고 다니니? 그럼 아내의 동의서 있어?”

황당한 질문이었다. 내가 내 새끼들을 데리고 다니는데 아내의 동의서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하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되었다.


담당자는 나를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한참 나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 같았다. 담당자는 내 차 키를 가져가 차 내부를 검사했다. 나름 나를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보여 달라고도 했다. 다행히 티켓을 e-티켓을 프린트한 게 가방에 있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렸다. 답답한 기분이었다. 뭐가 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하소연하기도 어려웠다. 아이들도 영문도 모른채 그곳에 있는게 답답하고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마 후, 담당자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 주었다.

 

"캐나다에  처음 들어올 때도 

당신과 아이들만 왔었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봐줄게요.

하지만 아이들을 아빠인 당신이 

혼자서 데리고 다니려면 

아내의 동의서가 필요해요.

막말로 당신이 아이들을 엄마 몰래 납치하고 

데리고   수도 있잖아요.

동의서가 있어야 

우리도 안심하고 당신을 보내줄  있어요.”

 

아빠가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 누군가에게는 납치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었다. 한국에서 아내 없이 아이들과 여행할 때 그런 오해를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빠가 맞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우리 나라였다.


입국 심사관의 이야기가 이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생경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두 달동안 캐나다에 살면서 캐나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내가 접한 캐나다는 아주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짧았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아이들과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자동차로 국경을 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여행이었다. 자동차로 국경을 넘지 않았다면 아내의 동의서 따위를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로 아내에게 동의서  장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간단하게 영작해 여권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이게 무슨 효력이 있는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갖고 다녔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  번도 이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거기가 이상했을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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