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이자 뉴욕 변호사인 이소은 씨의 아빠, 이규천 작가가 쓴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큰 딸을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대 교수로, 또 둘째 딸을 미국의 변호사로 키운 그의 이야기는 아빠로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꼭 아빠만을 위한 책은 아니었다. 엄마든, 아빠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그런 책이었다.
그는 그의 육아를 “방목형 육아”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게 울타리만 칠 뿐, 사소한 것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속에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우선 믿고 시작하는 것이 그의 “방목형 육아”의 핵심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은, 아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작가는 아이들의 잘못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아이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문제를 해결하게 했다.
“Forget about it”
작가는 아이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냥 잊어버리라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꼭 아이들에게 하는 것으로만 들리지 않았다. 작가 자신에게도 똑같이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잘못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은 부모 또한 해야 할 일이었다. 아이들을 믿는다면 그런 사소한 잘못이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 또한 필요해 보였다.
“무언가 실수를 한 순간 아이는 이미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다. 거기에 대고 잔소리를 퍼부어가며 상처를 긁어댈 필요는 없다. 화를 내며 꾸중한다고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만 이성을 찾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더 중요한 존재가 내 아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유리컵을 깼다면 먼저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펴보고 그냥 조용히 치우면 그만이다. 유리가 박살이 나는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상처를 받은 셈이니 말이다”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중)”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한동안 “Forget about it”이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자, 동시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 나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싶었다. 아내없이 캐나다에 있는 동안 더욱 신경 썼다. 아이들의 실수를 잘 보듬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 또한 엄마 없이 아빠를 잘 따라줬고, 사소한 실수에 잘 대처하며 지냈다.
하지만 나는 한 번의 아이 실수에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이의 잘못도 아닌 일에 아이에게 심한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그 사건에 그렇게 대응한 것을, 후회하며 지내야만 했다.
아이들의 캠프 일정이 다 끝난 후의 일이다. 캠프가 끝난 주말, 아이들과 위니펙 근교에 있는 모르덴(Morden)이라는 곳에서 하는 “Corn & Apple Festival”에 다녀왔다. 공짜 옥수수와 사과 주스를 마시며 신나게 놀았다. 푸드 트럭에서 점심도 사먹고, 놀이기구도 탔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도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다. 이런 저런 장을 보고 차로 돌아왔다. 나는 트렁크에 짐을 넣고 있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스스로 차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힘이 약한 둘째는 자기도 모르게 바람에 휩쓸려 버렸다. 열려고 했던 문이 뒤로 확 젖혀졌다. “찌익” 소리를 듣고 화들짝 달려가서 보니 옆 차의 한 쪽이 긁혀 있었다. 놀라서 얼음이 되어 버린 아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를 차에 앉히고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도 놀랐는지, 엉엉 울어버렸다. 우는 아이를 보며 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주인이 왔고 다행히 일은 잘 처리 되었다. 다소 복잡한 상황이긴 했지만 주차 중인 상태였고, 바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그제서야 아이가 보였다. 아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사실 아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들 차 문을 내가 열어주었더라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들을 꼭 껴안아주고 미안하다 말했다. 불같이 화를 낸 것에 대해 진심을 다해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다행히 아이는 금세 괜찮아졌고 다시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이가 잘 논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둘째는 속으로 나름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한동안 아이는 차 문을 열 때마다 그때의 사건을 떠올리는 듯 했다. 옆에 차가 주차 되어 있으면 형이나 나에게 차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아이는 나름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서울로 와서 우연히 할머니와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엉엉 울기도 했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며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괜히 나 때문에 아이가 상처를 갖고 살아가야 할 것 같아 걱정됐다.
어떻게든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불현듯 “Forget about it”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아이에게 자꾸 그 일을 들춰내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할 때마다, 아이가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우선 아이를 믿고 아이가 그 상처를 잘 견뎌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또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 먼저 그 일을 잊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대신 더 많은 사랑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성을 잃고 불같이 화를 내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해결책이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상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래, 다 잊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