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의 관광을 시작하다
본 여행기는 작년 7월부터 9월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위니펙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토론토로 넘어갔다. 그곳에서 뉴욕, 워싱턴까지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토론토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위니펙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데 갑자기 위니펙에서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이 캠프에 가던 첫 날, 갑자기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수술을 받아야 했던 날, 밴프에서 레이크 루이스를 만난 날. 그 당시 느꼈던 희로애락이 떠올랐다. 고마운 사람들도 하나 둘 생각났다.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누나였다. 누나네 가족이 없었다면 이곳에 올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끼리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캐나다 대학생 라이언과 그의 아버지, BTS를 사랑하는 필리핀계 이웃까지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꼭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토론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가는 길은 수월했다. 위니펙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금세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고, 별도의 심사 없이 우리는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유니온 스퀘어로 향하는 급행열차를 탔다. 급행열차는 시간도 가장 적게 걸리는 데다 아이들 요금도 무료인 터라 여러모로 효율적이었다. 기차를 탄 지 20여분 만에 유니온 스퀘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유니온 스퀘어 역에서 호텔까지는 거리가 꽤 됐다. 걸어서 15분 정도는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다고 역에서 호텔까지 택시를 타고 갈 수도 없는 상황. 결국 우리는 짐을 끌고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캐리어 3개에 손에 든 가방 2개 그리고 각자의 백팩 3개까지, 이렇게 총 8개의 짐을 들고 가야 했다. 아이들에게 캐리어 하나와 본인들의 백팩을 각각 맡기고, 나는 나머지 짐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호텔 쪽을 향해 걸어갔다.
캐리어를 끌기엔 작고 힘도 약했지만, 아이들은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했다. 백팩을 등에 메고, 자신의 캐리어를 으쌰으쌰 끌고 걸어갔다. 날이 더워서 땀도 삐질삐질 났다. 아이들이 조금 지친 것 같아 중간에 쉬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투정도 안 부리고 꿋꿋이 걸어갔다. 걸어가다 움푹 파인 곳에 캐리어 바퀴가 걸리는 바람에 여러 번 넘어지기도 했다. 울 법도 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씩씩하게 일어났다. 그렇게 몇 번의 넘어짐과 한 바가지의 땀을 흘린 끝에 마침내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호텔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너무 감사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아이들이 크게 성장한 것 같았다. 아빠의 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체력도 좋아진 듯했다. 특히 일곱 살 둘째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이번 여행 전까지만 해도 유모차 없이는 여행하기 힘든 아이였다. 지난번 엄마와 함께 한 여행에서는 걷다가 힘이 들어 도로에서 토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형과 함께 아빠를 도와가며 씩씩하게 자기 할 일을 해 냈다. 마냥 어리게만 보아왔던 아이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 작가는 그의 글과 강의를 통해 글쓰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소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글쓰기 근육을 키워야만 써야 할 글이 있을 때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평상시의 노력을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일에 비유한 그의 발상이 신선했다.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잘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여행을 많이 하면서 여행 근육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은 아이들도, 나도 여행 근육을 키우는 좋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이를 잘 극복해가며 자신만의 여행 근육을 탄탄히 키워나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내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나만의 근육을 만들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아이들 또한 아빠를 돕는 방법을 터득해 갔다.
아이들의 여행 근육은 뉴욕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토에서 아이들이 ‘체력과 끈기’라는 여행 근육을 보여줬다면, 뉴욕에서 아이들은 ‘적응력’이라는 새로운 그들의 여행 근육을 나에게 보여줬다.
토론토에서 뉴욕으로 넘어간 우리는 하룻밤만 자고 다시 워싱턴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게 여러모로 효율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뉴욕의 숙소가 너무 비싼 게 문제가 됐다. 하룻밤 잠만 잘 거라고 생각하니 돈이 너무 아까웠다. 우연히 YMCA에서 하는 호스텔이 눈에 띄었다. 하룻밤에 15만 원도 안 되는 뉴욕 맨하탄의 물가를 감안하면 아주 저렴한 곳이었다. 하지만 후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 싸긴 하지만 숙소가 너무 좁고 지저분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고민 끝에 잠만 자고 곧장 나올 거란 생각을 하고 예약을 진행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막상 가보니 호스텔은 많이 좁았고, 깨끗하지 않았다. 게다가 화장실도 방에 따로 없었다. 공용의 시설을 이용해야만 했다. 밤 늦게 들어와 아침 일찍 나가는 일정이었지만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있는 게 나는 많이 불편했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혹시나 벌레가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몇 번을 뒤척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예민한 아빠와 달리 좁은 침대에서 둘이 꼭 껴안고 하룻밤을 잘 보낼 수 있었다. 머무는 내내 불편한 기색도 전혀 없었다.
아이들이 잘 자는 모습을 보며 아빠로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의 놀라운 적응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이라면 달나라라도 여행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오히려 내가 문제였다. 어디든 여행을 하려면 내 여행 근육을 더 키워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