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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Feb 20. 2020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괜찮다.

캐나다에서 동물을 찾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아이들 캠프 일정이 끝나고, 위니펙에서 3시간 떨어져 있는 라이딩 마운틴파크라는 국립공원에 다녀왔다.   국립공원에 가면 야생동물을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밴프에서 곰을 만나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국립공원 캠핑장에 도착한 우리는 아메리카 들소인 바이슨 서식지에 갔다. 그곳에서 한참을 돌다 우연히 바이슨  마리를 만날  있었다. 유유히 우리  옆으로 지나가는 바이슨이 신기했다.  다른 바이슨을 만나기 위해 한참을 돌았지만 우리가  것은 애석하게도   마리가  였다. 떼로 지나가는 바이슨을 마주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뿔 달린 사슴을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무스와 엘크가 자주 나타난다는 곳에도 달려 갔다. 한참을 차를 몰고 다녔다. 지나가며 만난 관광객이 5분 전에 무스를 봤다는 말에 기대를 잔뜩 했지만, 무스는 우리와 연이 닿지 않았다. 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곰도 봤다는데 우리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야생 동물을 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실망한 눈치였다. 둘째는 지쳤는지 차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바이슨  마리라도   어디냐고 생각하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다음을 기약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괜찮다라고 생각하니 편안해졌다.


 캐나다에 와서 나의 많은 루틴이 무너졌다. 휴직을 하자마자 만들었던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시차적응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갔다. 새벽을 나만의 시간으로 활용해보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었고 일어나자마자 아침 준비를 하고 아이들 도시락 챙기는 것으로도 바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면 됐을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려웠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내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와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그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두 번 거르면서 나도 모르게 달리기는 꾸준히 하는 것이 아닌 어쩌다 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런데 이날 동물을 찾아 헤매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괜찮다"라는 나를 보면서 캐나다에서 몇 가지 루틴이 무너진 것도 "괜찮다"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 주변 지인들은 나에게 “여유를 가져라라고 충고를 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유를 가질  없었다. 짧은 휴직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이루고 싶었다. 그렇기에 매일 나만의 루틴을 지키는  중요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는 일상을 보냈다.


 매일 쌓아온 나만의 루틴을 깨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그것을 깨고 나면  산이 무너질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변화가 있을  같아 무서웠다. 다시 예전의 나처럼 그저 그런 회사원으로 돌아갈  같았다. 습관도 하루 거르면 이내 무너져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쩔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내려 놓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시간이 나면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면 됐고, 시간이 나지 않으면 어쩔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덕분에 며칠 안한다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언제든 다시 시작할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니, 나중에 하면 된다라는 여유를 가질  있었다.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느슨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때부터였다.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에게 있어서 쉼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글을 안쓴 것도, 운동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쯤 못한다고 애태우지 않는 것, 아등바등 지내지 않는 것 자체가 쉬는 것이 되었다. 혹자는 그게 무슨 쉬는 것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편안해 지면 언제나 찾아오는 "불안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나에게, 여유를 준다는 것 자체가 큰 쉼이 되었다.


박진영 작가의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을 보면 나 자신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보다는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되고 이는 행복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현실적이면서 따뜻한 태도를 지닌다고 해서 약해 빠진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 대한 너그러움이야말로 우리에게 그대로 쓰러져 있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강인함을 준다. 이것은 우리가 삶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책임감 있는 태도이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중)”


 예전같으면 자기 합리화라고 비난할 수도 있는 문장이었지만 이 문장을 보고 내가 어떻게 나의 루틴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몰아 붙이기 보다는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다.

 

"그래. 괜찮아. 캐나다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하지 못해도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많은 것을 얻었고, 더 중요한 것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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