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a wonder"
Wonder(한글판 : 아름다운 아이)를 원서로 읽었다. 감동적인 책이었다. 책 말미에 아들인 어거스트에게 엄마가 하는 말 한마디가 최고였다. You are a wonder라는 말이 아름답게 들렸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고 차별을 당해야 했던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상황이 안타까웠고 또 슬펐다. 아이에게 헌신적이었던 엄마가 주인공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이 한마디는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아이에게도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다. 다행히 아이도 긴 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함께 영화도 봤다. 아직 긴 책을 읽기에 무리가 있는 둘째와도 이야기를 공유했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책보다 덜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같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아내도 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온 가족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읽는 것은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작년부터 나와 아내는 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굳은 다짐으로 영어 공부를 위해 원서를 읽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영어를 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책을 조금 더 재밌게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내의 첫 책은 해리포터였다. 해리포터를 좋아했던 아내는 온라인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해리포터를 읽으며 어릴 적 읽었던 책의 감동을 원서로 새롭게 느꼈다. 나의 첫 원서는 미라클 모닝이었다. 번역본이 아닌 원서를 읽으며 저자의 느낌을 오롯이 이해하고 싶었다. 원저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권의 영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새로운 즐거움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읽었을 때의 성취감도 컸다.
원서를 읽다보니 한글과 영어의 비슷한 표현도 눈에 들어왔다. 소가 핥은 머리라는 우리나라의 표현이 영어로 cowlick이라고 쓰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똑같은 표현이 똑같은 의미로 쓰인다는 게 신기했다. Wonder를 읽을 때에는 "It was so completely out of the blue."라는 표현을 접하게 되었다. 갑자기, 난데 없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out of the blue라는 문구를 보면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는 우리식 표현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의외로 재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읽기 시작한 원서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한 경험이었다. 물론 한 권의 영어 책을 읽는다는 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편안하게 읽다보니 몇 권의 영어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로 책을 읽다 보니 새로운 경험도 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같은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아이는 한글로 된 책을 읽고, 부모인 나와 아내는 영어로 읽게 되었다. 덕분에 아이들과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더 잦아졌다. Wonder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아내는 영어로, 아이들은 한글로 책을 접하면서 서로 공통의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었다.
우연히 마틸다를 읽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원서인데다 아이도 좋아하는 책이라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쉽게 읽혔고 내용도 재미있었다. 한글책이라면 조금은 시시했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영어로 씌여져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재미난 것은 아이의 반응이었다. 아이는 나보다 먼저 마틸다를 읽었다. 그가 로알드 달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책 마틸다 덕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마틸다를 보고 있는 상황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아빠의 독서에 참견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반전을 아빠가 읽었는지 궁금해 했다.
책 <공부머리 독서법>에서 최승필 작가는 독서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책을 많이 읽었느냐 보다도, 흥미를 갖고 제대로 읽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아이가 자신이 읽은 책을 부모가 읽는 것을 보면서 흥미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서 <공부머리 독서법> 책이 생각났다. 아이가 독서를 제대로 했는지를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공부머리로 연결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재밌는 경험을 하는 것으로 독서가 주는 가치를 충분히 경험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를 위해서 읽기 시작한 영어책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과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의외였다. 다행히 아이들도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이들과 무엇을 하든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 부부가 처음부터 아이들과의 독서를 위해 영어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런 유익하고 재미난 독서 경험을 마련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부모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서로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재미있는 효과도 있었다. 올해 5학년이 된 큰 아들도 영어 책 읽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아이에게 영어 책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권유했을 뿐이었는데, 부모의 영향인지 아이 또한 영어 책을 읽으며 재미있어 했다. 제대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걸로 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같이 읽고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최근 아이들과 아이 엄마는 <웨이사이드 학교 별난 아이들>을 함께 읽었다.(아쉽게도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했다) 우연히 책에 있는 문구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슬퍼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기분이 좋은 데는 이유가 필요 없어요."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아이가 먼저 운을 뗐다. 아이 엄마는 곧장 영어 책의 해당 부분을 찾아 읽어 내려갔다.
"You need a reason to sad. You don't need a reason to be happy"
아이는 자기가 읽은 한글 책의 표현을 영어로 들으며 신기해 했다. 아이와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 속에서 정말 기분이 좋은 데는 아무 이유가 필요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즐거워하는 것 자체가 "happy"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의 새로운 형태의 독서 경험 또한 충분히 happy한 경험이었다. 기분 좋은 데 이유는 딱히 필요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재미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