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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Mar 27. 2020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아이들을 보며 또 하나를 배웁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


“링컨 센터가 제일 재미있었어.”

 2박 3일 간의 워싱턴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둘째에게 어디가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봤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링컨센터’라고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답이다. 당연히 자연사박물관이나 항공우주박물관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워싱턴에 온 것은 박물관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링컨 대통령 동상이 있는 그곳을 가장 재미있었다고 대답했다. 황당한 마음에 아이에게 그곳이 왜 좋았는지 물어봤다.      


“미끄럼틀을 탈 수 있어서 좋았어.”     


 일곱 살 어린이다운 대답이다. 뭔가 링컨 대통령에 대한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아이는 아이였다. 링컨센터에서 내려오는 계단 옆에 평평한 돌로 경사지게 놓인 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계단이 아닌 경사진 난간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길 바랐다. 크게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아이들이 원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번만’ 타기로 약속했다. 아이들은 시원하게 내려왔다.

한 번에 만족할 아이들이 아니었다. 더 타고 싶다는 아이들의 간절한 요청에, 나는 ‘마지막’ 한 번이라고 약속을 하고 아이들이 난간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허락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신나게 두 번 미끄러져 내려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에서 아이들을 받치고 있었기에 아이들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의 행동에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짧게 탔을 뿐인데 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아이 마음이었다.


뉴욕의 하이라인파크에서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에 짐을 놓고선 곧장 하이라인 파크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재미난 여성을 만났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던 그녀는 아이들에게 풍선을 불어 재미난 장난감을 무료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그녀에게 달려가 풍선을 받아 왔다. 멋진 칼 모양의 풍선이었다. 아이들은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 그리고 둘이서 칼싸움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칼싸움을 하며 나를 따라왔다. 덕분에 나는 하이라인 파크를 거닐며 뉴욕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철길 위에 꽃과 나무를 심고, 예술작품을 배치해 사람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게 흥미로웠다. 집 근처에 있는 경의선 숲길도 생각났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보니 하이라인 파크를 끝에서 끝까지 횡단하게 되었다. 꽤 긴 거리를 걸은 것. 아이들도 뒤에서 나를 잘 따라왔다. 다리도 아플 법 한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둘이서 신나게 칼싸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와 그냥 걸었다면 힘들다고 몇 번이고 돌아가자고 했을 아이들이었지만 아이들은 흥미로운 칼싸움 덕분에 긴 거리를 잘 걸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준 게 고맙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지치지 않고 놀게 해 준 풍선으로 만든 칼이,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준 이가 고마웠다.


지금이 즐겁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링컨센터에서 탔던 미끄럼틀이 가장 재미있었다는 둘째의 이야기를 듣고, 그리고 아이들이 하이라인 파크에서 칼싸움을 하며 신나게 노는 것을 보면서 여행에서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순간순간을 얼마나 잘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링컨이 누구인지 잘 몰라도, 하이라인 파크의 철길 위에 뭐가 있든지 그냥 그곳에서 재미있게 노는 걸로 여행을 온전히 즐겼다. 아이들을 보면서 여행이 나에게 부여한 의무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본전’ 생각하고 애쓰며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휴직하면서 만난 몇몇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모두들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휴직이 끝나고 복직을 하든,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든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는 그 순간의 재미를 온전히 느끼며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여행과 달리 일은 즐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어려움이 따라올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순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막상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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