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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pr 17. 2020

끝까지 잘하자

 이 이야기는 지난 9월의 이야기입니다.


US 오픈 결승전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2019 US Open 테니스 대회가 열렸다. 방송 중계로 본 게 고작이었지만 아이들은 처음 접한 테니스를 좋아했다. 결승전도 볼 수 있었다. 결승전은 우리가 대부분의 일정을 마치고 뉴욕여행을 할 때 치러졌다. 스페인의 나달과 러시아의 메드베데프의 경기였다. 역시나 메이저 대회 결승답게 경기는 꽤나 흥미로웠다. 세트 스코어 2:2까지 갔고, 결국 마지막 세트인 5세트가 되어서 우승자가 결정되었다.

 

 팽팽한 접전은 5세트 중반 나달에게 기우는 듯 했다. 나달이 무난하게 이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범실도 잦았다. 중계방송에서 클로즈업 하는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상대 선수는 흔들리는 나달을 공략했고 야금야금 그를 따라갔다. 결국 턱밑까지 추격했고 결과를 알 수 없을 때까지 왔다. 나달은 마지막에 정신을 가다듬고 안간힘을 써서 겨우 승리를 지켜냈고, 2019년 US Open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승리가 확정되고 나달은 감격스러웠는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를 보면서 나달의 마음을 혼자서 헤아려봤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나달은 거의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고는 집중력이 흐트러져 버린 것 같았다. 고지에 다 왔다고 생각하고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조급해진 듯 싶었다. 그리고 그런 조급함이 그의 페이스를 흔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끝까지 잘하자

 

 나달의 흔들리는 표정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긴 여행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나 또한 많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일정이 끝날 때쯤, 그러니까 US Open 결승전을 볼 때쯤 나는 여행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여행이 힘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다니는 여행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아이들도 잘 따라줬고, 덕분에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여전히 불안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됐고, 아이가 맹장이 터졌던 때처럼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 또 벌어질까 두려웠다. 끝까지 마음을 놓기 어려웠던 것이다. 뉴욕에서 마지막 일정을 보내면서도, 다시 뉴욕에서 토론토로 넘어갈 때도 그랬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 불찰이긴 했지만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를 타다 위험할 뻔 했던 터라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고운 소리를 하기보다는 엄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그런 나에게 서운해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나달이 우승하는 순간 나 또한 다짐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은 것. 아이들에게 끝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흔들리지 말자고, 끝까지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의 말을 되뇌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자 서울로!


 드디어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이제 아이들과 씻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면 이 긴 여행이 끝난다. 개운하게 일어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에 짐을 챙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둘째도 드디어 엄마를 만나러 간다며 신이 났다. 캐나다에서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던 씩씩한 아이였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울지 않았던 아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엄마 보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7살 아이에게 70일 간의 여정이 쉬웠을 리는 없다. 잘 버텨준 아이가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여행이 끝났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건 첫째뿐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첫째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 내년에 또 오고 싶다며 아쉬워했다.

 호텔에서 짐을 챙겨 공항에 도착, 티케팅을 하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큰 무리 없이 일은 진행됐다. 우리는 제 시간에 인천행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 또한 별 탈 없이 인천에 도착했다. 그렇게 70일 간의 나와 아이들의 여행은 끝이 났다. 편안하게 입국심사도 받고 짐도 찾아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둘째는 엄마를 보자마자 와락 품에 안기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이들 마음이 이해도 됐지만, 나도 모르게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70일 간 함께 보냈지만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엄마가 1순위였으니.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긴 했지만 서울의 하늘은 위니펙의 그것만큼 파랗지는 않았다. 귀국한 게 실감이 났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시원하면서도 서운했다.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준 여행이었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기약할 수 없었기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아주 특별했던 우리의 70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주, 잘, 그리고 해피엔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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