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품종에 대하여
한 때 TV에 나오는 인스턴트 커피 광고마다 "아라비카"를 강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라비카 100%의 커피를 담았다면서 자기네 커피를 사먹으라고들 소비자를 설득하더라고요. 믹스커피의 고급화 시대가 열렸다는 언론 기사도 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는데요. 광고와 기사를 보면서 도대체 아라비카가 뭐기에 이걸 차별화 포인트로 잡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커피에 대해 일자 무식이었던 제게는 그런 광고는 의미없는 함성일 뿐이었죠. 커피는 그저 달달하고, 잠이나 깨게 하면 전부였으니까요.
솔직히 최근까지도 아라비카가 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간 여러번 이 단어를 접했지만 역시나 크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커피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커피 공부를 하다보니 아라비카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됐습니다. 이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리고 아라비카에 대해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전세계 커피는 아라비카와 로브스타, 그리고 리베리카 이렇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고 합니다.
우선 아라비카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데요. 해발고도 900m에서 2400m 사이의 고산지대에서 주로 생산된다고 합니다. 고도가 높아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되는 커피인데요. 산기슭 등 좁은 면적에서 재배되기에 기계화가 어려워 농민이 직접 수작업으로 재배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맛과 향이 다양하고 뒷맛이 깔끔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상당수의 커피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커피콩은 아라비카 원두라고 합니다.
한편 로브스타는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하는데요. 해발고도 600m이하의 저지대에서 경작됩니다. 고도가 낮은 곳에서 재배되는 만큼 24도에서 30도 사이의 고온에서도 잘 자라는데요. 쓴 맛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아라비카에 비해 저품질로 인식되곤합니다. 하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하는데요. 인스턴트 커피의 주요 원료로 쓰인다고 해요. 블렌딩 커피로 원두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다양한 원두를 혼합했을 때 로브스타가 커피의 맛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네요.
이 두가지에 대한 설명을 접하고 나서야 그때 왜 다들 아라비카를 강조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동안 써왔던 원두를 아라비카로 바꿈으로써 인스턴트 커피를 조금 더 "고급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커피 회사에서 알리고 싶었던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같은 커피 무식쟁이에겐 별 효과 없는 이야기였지만요.
한편 리베리카는 품종도 있는데요. 이는 세계 커피 생산량의 3% 정도도 채 안되는 소량의 커피인데요. 라이베리아 지역에서 재배되는 커피라고 합니다. 로브스타와 같이 저지대에서도 잘 자라는데요. 잘 자라기 때문에 생존력이 강하여 재배하기도 쉽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널리 퍼지지 않는 것은 다른 원두에 비해 향은 약하나 쓴맛이 강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커피라서 그런 듯 싶더라고요.
커피의 3대 품종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커피가 갖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 보였습니다. 커피의 생산국은 커피 벨트 혹은 커피 존으로 불리는 적도 인근 지역의 국가들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지역이 세계적인 빈곤국들이 몰려있는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지역민들이 커피농사를 생업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문제는 커피의 소비는 커피벨트 혹은 커피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한 이슈가 많이 발생한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커피의 소비가 커피를 생산하는 커피 농부들의 이익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1994년에서 2004년 사이 커피의 과다 공급이 이뤄지면서 커피 파동이 일어났고 그 결과 원두의 가격이 급락하게 되는 바람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럽이나 북미 지역의 카페에서 팔린 커피 한 잔의 1~3%, 그리고 슈퍼마켓에서 팔린 커피의 2~6%의 수익만이 커피 농가에게 돌아갔다고 해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커피 농가가 공정하고 안정적으로 생산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정무역 커피를 판매한다고 광고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정확하고 구체적인 과정을 알 순 없지만 공정무역 인증 제도 등까지 마련함으로써 커피의 유통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커피의 생산이 커피 농가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게 엿보이는 활동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커피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에도 공정무역 커피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따뜻하고 편안하게 마시는 커피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데요. 제게 이를 알려준 계기가 됐던 것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이었습니다. 2009년 당시, 무한도전 멤버들이 뉴욕에 방문해 들렀던 커피 매장이 Think coffee라는 곳이었는데요. 예능 프로그램의 힘 덕분에 사람들은 이곳의 커피가 공정무역 커피라고 하며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무한도전 프로그램에 방영되고 나서 한국에도 Think Coffee 매장이 만들어졌다고 하던데요. 이는 공정무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충분했는데요. <무한도전>의 힘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공정무역에 대한 움직임은 전세계적인 트렌드이기도 한 듯 해요. 스타벅스도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겠다고 하며 이를 따르는 것이 윤리적 소비라고 광고하기도 하는데요. 스타벅스의 이런 노력이 단순한 광고가 아닌 진정성 있는 노력이길 바라봅니다. 더불어 많은 분들이 커피 공정무역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커피를 알면 알수록 재미난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속에는 많은 서사가 담겨 있어요. 맛에 대한 서사도 있고, 역사에 대한 서사도, 사회 경제적인 서사도 있는데요. 커피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도 종종 볼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불편한 것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가 누군가에게 불편을 야기하진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커피 회사의 이익 못지 않게 커피를 생산하는 저 멀리 적도 근처의 국가들의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는, 더불어 그들도 즐길 수 있는 커피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