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말고 복직> 인터뷰 - 6. 신기백 님
우리는 부모가 될 준비를 얼마나 하고 부모가 될까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아빠되는 법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그것 또한 공부가 필요한 것이었더군요. 그래서 아내도 아이도 저 때문에 고생을 해야 하는 철부지 아빠로 몇 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빠가 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아빠가 되는 법을 익히니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이더군요. 아빠가 된다는 것이 무거운 짐이고 부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주는 가치는 충분히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휴직을 해서 아이들과의 시간을 가졌던 것은 참된 아빠의 길로 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다소 떨어진 시간을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뒤쳐질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은 분명 다른 어떤 것과 바꾸지 않고 싶은 소중한 시간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시간에 만난 유경석님의 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https://brunch.co.kr/@tham2000/240
추석에 한 주 쉬고 2주 만에 찾아온 <퇴사 말고 복직> 시리즈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제가 휴직하면서 알게된 분의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보험회사에서 투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기백님이십니다. 어떤 흥미로운 휴직과 복직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지 한 번 같이 만나보시죠.
휴직하고 나서 남성 휴직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남성 휴직자들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았다.
평일 낮에 아이들 유치원 보내고 학교 보낸 사이 (코로나 전의 시기라 이게 가능했다) 아빠들을 모아봤다. 휴직한 남성들만의 브런치 모임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때 기백님이 참석했다. 그리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 가셨다. 금융권에 계시는 분이셔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많았다. 애석하게도 그 이후에 더이상 기백님을 만날 수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로는 모임에 오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이웃 블로그에 기백님의 닉네임이 눈에 띄었다. 복직한 지 조금 된 것 같았는데, 휴직 때보다 더 활발하게 블로그 활동을 하고 계셨다. 어쩌면 계속 활동하셨는데, 내 눈에 조금 늦게 들어왔을 수도 있을 거다. 어찌됐든 그의 블로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동산, 주식 등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았고, 간단한 일상을 정리한 글에서는 재미난 부분도 많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이야기가 재미났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인터뷰에 담아보고 싶었다. 대뜸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 접선을 시도했고,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다. 감사하게도.
Q1. 우선 자기 소개부터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신기백이라고 하고요. 6살, 4살 남매를 키우고 있고요.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자산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11년차 직장인입니다. 블로그에서는 꿈아빠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shinkib
Q2. 저와 뵈었던 게 2019년 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때 휴직 중이셨죠? 어쩌다 휴직을 신청하게 되셨나요?
맞아요. 제가 2018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1년에 며칠 모자란 기간동안 휴직을 했었는데요. 휴직이 거의 끝날 때쯤 호진님의 블로그에 남성 휴직자들의 모임에 대한 안내문을 보고,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이후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참여하진 못했었고요.
저는 아이들 육아 때문에 휴직을 하게 됐는데요. 아내가 휴직하는 사이, 아내의 직장이 주거지에서 멀리 이전하면서, 당시 4살과 2살이었던 아이를 처가에만 맡기기에는 부담이 컸어요. 퇴근하고 아내도 저도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너무 늦어졌거든요. 이번 기회에 아빠로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서, 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마련해보고자 휴직을 선택했습니다.
Q3. 아이들 육아를 위한 휴직이셨네요. 휴직 기간 동안 그러면 아이들 돌보시는 일을 주로 하신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휴직의 목적이 "아이들"이었기에 주된 활동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다시 돌릴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집중해서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맞벌이 부부로서의 한계에 대해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설계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 더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고요.
Q4. 아이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맞아요. 아이들이 어리고 예쁠 때 듬뿍 사랑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신기한 경험도 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아빠를 찾더군요. 엄마 바라기 아이들이었는데 말이죠. 물론 제가 복직을 하고나서는 다시 엄마를 찾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긴 했지만 휴직하는 기간 동안 아빠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게 뭐라고.
아빠 육아가 필요하다는 것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과 아빠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제가 줄 수 있는 정서적인 면을 듬뿍 줄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기백님으로부터 질문지에 대한 답을 받고, 사진을 요청했다. 단독사진을 요청했는데 기백님은 혼자 찍은 사진이 없다며 당황해 하셨다. 그의 사진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그가 있을 뿐이었다. 물론 아쉬워 하기도 했지만 그게 진짜 기백님의 모습인 것 같았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 그는 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Q5. 맞벌이 부부에 대한 한계가 보였다는 이야기도 궁금해요.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셨을까요? 그리고 덕분에 미래에 대해서도 설계해 보는 시간을 가지셨다고 했는데,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대한민국 맞벌이로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고, 돈도 벌고, 자산도 쌓아서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데 애들 양육 및 교육비만 해도 크니 미래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열심히 일만하는 게 최선인 거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우리 넷이 대한민국에서 좀 더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미래 직업이나 부동산 등에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자연스레 투자도 하고 은퇴 후 계획도 세우게 되더라구요. 물론 그 중심엔 아이들이 있었고요.
Q6. 그러셨군요. 그럼 이제부터 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봐야 할 텐데요. 작년 7월 복직하셨어요. 어떠셨어요?
휴직하기 전에는 대체투자부문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는데요. 복직하면서 기존에 했던 것과 유관한 업무인 대체 투자를 심사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직접 제가 투자를 했다면 지금은 그것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고 보시면 되실 것 같아요. 휴직 전에 했던 일들과 연결되어 있는데다 과거에 제가 직접 투자했던 것들을 다시 복기하면서 관리하고 있어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리스크 관리 측면 등 다양한 관점에서 투자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아요. 투자에 대한 제 시각도 넓어졌고요. 제 경력도 이어가고 미래 설계를 위해 도움도 되는 것 같아 업무에 만족하고 있어요.
* 대체투자란?
주식이나 채권 같은 전통적인 투자 상품이 아닌 다른 대상에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상은 사모펀드, 헤지펀드, 부동산, 벤처기업, 원자재, 선박 등 다양하다.
(한경 경제용어사전 참조)
Q7. 복직 첫날, 직원들 반응도 궁금해요. 어땠어요?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휴직 전에 했던 일과 유관한 업무이긴 했지만 팀은 달라졌었는데요. 동료들은 이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이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큰 변화가 없었어요. 팀장님도 같았고요. 다들 반갑게 맞아주셨고 그래서 1년 만에 복직했지만 금세 적응할 수 있었어요.
회사 내에서 여성들의 육아휴직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여서 제가 휴직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도 거부감 같은 것도 없었어요. 남자도 휴직을 다녀왔구나, 정도로 특이하게 생각하시는 정도였어요.
Q8. 그래도 복직을 하고 나서 회사에서의 기백님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드는데요. 어떠세요?
휴직 전에는 제가 감정의 기복이 큰 편이었어요. 회사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휴직하면서 감각이 무디어진 것인지, 아니면 제가 단단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크게 개의치 않게 됐어요.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부담없이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내공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일을 잘 하면서 그것이 회사에도 도움이 되면서도 우리 가족과 저의 미래에도 보탬이 되는 쪽으로 그려보려고 하고 있어요.
Q9. 회사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요. 어쩌면 기백님이 지금 회사에서의 일과 자신의 일의 교차점을 찾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점에서 조금 부럽기도 하네요.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 그리 부러워하실 거 까지는 없어보여요.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회사 일이라는 게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휴직을 하고 나니 천천히 가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여유롭게 지내자라고 생각하니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많이 편안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일과 가족을 동시에 지키는 거라 생각해요.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아빠에게 달려들 때 실컷 같이 놀아야죠.
Q10. 인터뷰를 정리하다보니 기백님의 품성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직접 뵌 건 한 번 뿐이지만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 정겹기도 하네요. 복직을 막 시작한 제게도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고요.
휴직에 대한 아내분의 반응이 궁금해요. 이야기만 들어보면 아내 분도 기백님의 휴직을 만족해 하실 것 같은데요?
호진님의 질문지를 받고 아내에게 물어봤는데요. 아내는 제 휴직에 대해 꽤 만족한다고 하네요. 또 고맙게 생각한다고 하고요.
우선 아내의 커리어를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맞벌이 가정의 경우 남편의 휴직이 일과 가정의 양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의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커리어가 끊기는 경우가 많은데, 제 아내의 경우 제가 육아를 전담하는 1년 동안 맘 놓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경력단절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많은 시간 함께했다는 점에서도 좋게 봐주는 것 같았어요. 아내가 채워주지 못한 정서적인 부분을 제가 채워줄 수 있었고, 그게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았거든요. 아이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도 흐뭇해 했고요.
마지막으로 휴직이 수년간 달리기만 했던 저에게 쉼을 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아내는 만족해 했어요. 저를 위한 시간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휴직 이후에도 편안해진 모습도 아내는 좋아했고요.
Q11. 이미 어느 정도의 답을 들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휴직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사용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휴직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족에게 남편의 휴직이 더없는 기회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뵌 것은 한 번 뿐이었지만 기백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그를 뵈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잘 잡아가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점이 좋아 보였고,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워보고 싶었다.
또한 아내의 경력단절에 남편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백님의 아내분도 남편이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했기에 회사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을 거다. 어쩌면 남성의 육아휴직이 성평등 문화를 정착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해버리면 어떨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