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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04. 2021

대기만성형 달리기

첫 스타트보다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대기만성


올림픽 경기가 한창이다. 코로나 시국에 굳이 대회가 열려야 하냐며 개최에 회의적이었는데, 막상 경기가 열리기 시작하니 누구 못지 않게 올림픽에 빠져 지내고 있다.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모습에 몰입해서 경기를 보는 중이다. 열정을 바쳐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면 나 또한 자극을 받고 있다. 그들을 보면 뭔가 힘이 솟는 기분이다.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든 그렇지 못하든 5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온 만큼 후회없이 경기를 하는 모습이 멋지다.


올림픽 경기를 보다 보면, 대기만성형 선수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대기만성은 한자어로 직역하자면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노력 끝에 다소 늦게 큰 사람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꾸준히 노력해서 견뎌낸끝에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을 대기만성형 선수라 부른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런 선수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펜싱 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여준 사브르의 김정환 선수나, 에페의 강영숙 선수 또한 대기만성형 선수라 할 수 있다. 30 대 후반의 운동 선수로서는 다소 많은 나이였지만 그들은 투지를 불사르며 좋은 경기를 펼쳤고, 우리나라에 메달을 안겨 주었다. 


대기만성형 선수들을 보면 더 큰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들이 인고의 시간을 얼마나 힘겹게 견뎌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도 많았을 테고, 노력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런 여러 번의 흔들림을 극복해 내고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 노력이 더욱 값져 보인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힘을 얻었으니까. 



꾸역꾸역 들인 시간을 소중히 여기다


나는 대기만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디에서든 다소"튀는 편"에 속했다. 그렇다고 큰 성과를 낸 건 없었지만 어디에 속해서든 처음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곤 했다.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편이어서, 성과도 빨리 나오는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런 내게 자기계발의 과정은 조금 다른 형태로 다가왔다. 나를 바꿔보겠다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여러 활동을 했지만 그것들이 곧바로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험은 성적표가 나오고, 프로모션은 결과가 나왔지만 내가 아침마다 일어나서 글을 쓰는 일들이 곧장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쉬이 지치고 흔들릴 때가 많았다. 금방 하면 성과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조바심이 났다. 과연 내가 맞게 하는걸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자꾸 남과 비교하면서 나를 자책했다. 그런 마음을 느껴봐서인지 대기만성형 선수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이 얼마나 심히 흔들렸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흔들리면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를 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면서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갔다. 스스로에 대해서도 관대해졌다. "괜찮다"라는 마음으로 오뚝이처럼 흔들려도 곧잘 중심을 잡아갔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하는 것이 꼭 대단한 성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거라는 믿음도 가질 수 있었다. 올해 버킷리스트를 만들면서 나만의 키워드 중 하나로 "꾸역꾸역 들인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적은 것도 내가 적립한 시간이 분명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리기도  후반부가 중요합니다. 


꾸준함에 힘을 느끼게 한 데는 달리기의 도움도 컸다. 꾸준히 달리기를 하면서 거리를 늘려갔다. 처음에는 1km도 힘들었는데, 뛰다 보니 5km를 뛰게 되었고, 어느새 주말마다 10km는 너끈히 뛸 수 있는 체력을 갖추게 되었다. 첫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나서 얼마간 고생을 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매일 조금씩 달리기 연습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더 달렸던 하루들을 몇 년 동안 쌓은 것이 헛되지는 않았다. 



꾸준히 달리면서 얻은 또다른 것은, 거리를 늘려가기 위한 중요한 포인트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에너지가 넘친다고 해서 그것을 초반에 쏟아 부으면 나중에는 쉬이 지쳐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그래서 풀코스를 달릴 때에는 에너지를 끌어 올리기 전까지는 최대한 천천히 달려야 한다고도 하는데 이는 비단 42.195km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0km가 됐든,  1km가 됐든 내 체력을 초반에 다 소진해 버리면 완주하기가 어렵다. 천천히 내 페이스를 맞춰 가며 에너지를 끌어 올리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달리는 것은 완주 뿐만 아니라 기록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내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처음에 잘 뛰었다가 막판에 힘이 빠지면 오히려 처음에 스퍼트를 올렸던 것 이상으로 까먹게 된다. 이는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처음에 벼락같이 치고 나갔지만 후반부에 퍼져서 따라 잡히는 경우를 우리는 몇 번의 경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자신의 체력을 잘 관리하면서 끝까지 좋은 페이스로 달릴 수 있도록 몸 상태를 조절하는 게 필요하다. 그 처음은 비록 미미할지라도 끝이 창대하게 해야 하는 것이 장거리 달리기다. 마치 대기만성형 선수들이 한참 후에 빛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할까? 처음은 느릴지언정 자기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후반부에도 지치지 않고 힘차게 달릴 수 있으니까. 


자신만의 페이스를 잘 맞춰 갑시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마다 운동을 하는게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달리는 것은 달리기가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달리기의 소소한 팁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리고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내 페이스에 맞춰 달린 것이 완주와 기록향상에 도움이 되듯이, 나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너무 신경쓰기 보다는 내 페이스에 맞춰서 그렇게 뚜벅뚜벅 가면 내가 하는 것들도 언젠가 꽃을 피울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이가 토끼를 의식하고 오버페이스를 했다면 어땠을까라고 가끔씩 상상한다. 본인 상태도 모른 채, 토끼를 따라 잡겠다고 초반부터 빠르게 달렸다면 거북이는 토끼가 아무리 낮잠을 잤다 하더라도 토끼와의 경주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거북이 또한 나가 떨어져 완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토끼처럼 방심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되겠지만 본인이 느리다고 너무 조바심을 느끼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길고 짧은 것은, 아니 빠르고 느린 것은, 아니 그것도 아닌 완주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결국 나만의 페이스를 얼마나 잘 알고, 그것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있을테니 말이다. 거북이가 토끼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페이스로 뚜벅뚜벅 달렸던 것처럼.


대기만성형 선수들이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갔던 것처럼 우리의 달리기도, 자신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만의 페이스로 가보면 좋겠다.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나간다면 분명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조금 시간이 걸릴지라도 분명 웃으며 골인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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