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나서 마무리 운동을 잊지 마세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 봤던 TV 속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한 회사의 화장품 광고 카피였던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는 말이 내게 그랬다. 화장도 안하는 내게, 어쩌다 이 광고 카피가 훅 들어왔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뭐든 마무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말에 응축된 것 같았다.
이 광고카피가 나의 신혼 초 결혼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회사 생활이 바빴던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쓰러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아내가 꼭 씻고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짙은 화장을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썬크림이라도 발랐기에, 잘 지우고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내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피곤해 기절하다시피 자고 있는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물론 아내는 내가 깨우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기가 발동했고, 몇번은 자고 있는 아내를 목욕탕에 옮겨놓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광고 카피 속의 문구가 무의식의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듯 했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어쩌다 달리기를 하다가 어릴적 광고 카피가 생각났고, 과거의 기억이 소환됐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저런 생각이 이어졌다.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화장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사후처리를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회사 일이었다. 회사에서도 뒷수습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보통은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지만 진짜 경쟁력은 만들어 놓은 것들을 잘 관리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개선의 작업이 중요하다. 영업도 마찬가지다. 잡은 고기라고 생각하고 이미 모셔놓은 고객을 방치하면 큰일이 난다. 떠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고객관리를 해야 한다.
글쓰기도 똑같다. 글을 쓰기만 해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다 쓰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소위 말하는 퇴고의 작업이 필요하다. 강원국 작가는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고쳐쓰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다 쓰고 난 후 퇴고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회사 일이고 글쓰기만 그런 것은 아니다. 뭐든 마찬가지다. 하고 나서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하다. 뒷 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뒷처리를 잘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애를 하다가도 헤어질 때 잘 마무리 짓는 게 중요한 것처럼.
달리기를 하다 마무리와 관련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달리기도 달리는 것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끼기 때문이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피곤함을 덜 느끼고 오랫동안 부상없이 달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3년 째 달리기를 하며 알게 됐다.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마무리 운동을 할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됐다. 보통은 운동하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마무리 운동을 안하고 건너 뛸 때가 있다. 특히 바쁜 직장인일 경우 시간을 떼어 운동까지 했는데 마무리 운동 시간까지 마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5분이든 10분이든 마무리 운동을 따로 해야 한다는 것을 꼭 생각해 두는 게 필요하다. 글을 다 쓰고 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고쳐쓰기가 가능한 것처럼 달리기를 하고 나서 마무리 운동을 해야 한다고 뇌에 각인 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마무리 운동을 할 수 있다.
마무리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뇌에 각인시켰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마무리 운동을 하느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때 신경 써야 하는 것은 근육의 피로감을 잘 풀어주는 것에 있다. 달리느라 힘들었던 근육을 살살 달래주는 게 포인트다. 흔히들 "정적 스트레칭"이라 불리는 것들을 달리기를 다 하고 마무리 운동 때 해주는 게 좋다. 달리기 초창기 시절,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마무리 운동을 따라 했었는데, 초반에는 이렇게 남들이 하는 영상을 보고 똑같이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잘 풀어줘야 다음날 피로를 덜 느낄 수 있고 그래야 지속해서 달릴 수 있다.
폼롤러같은 도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혼자서 풀기 어려운 근육들을 폼롤러를 활용하면 훨씬 잘 풀릴 수 있다. 꼭 마무리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폼 롤러를 활용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집에서 글을 쓸 때에는 폼롤러로 발바닥을 마사지 하곤 하는데 이 또한 발의 피로를 푸는데 꽤나 도움이 되었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새로운 꿈이 생겼다. 세계 곳곳의 도시에 가서 달리기 대회에 나가는 꿈이 바로 그것이다. 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달리기 코스로 만든다고 하던데, 달리기를 하면서 그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눈으로 그리고 발로 담고 싶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언감생심이긴 하지만 언젠가 코로나 이슈가 해결되면 꿈을 이룰 수 있을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바로 부상이다.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내 몸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다. 그리고 가장 최선의 치료는 예방이라는 말처럼 그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아프지 않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래도록 즐겁게 달리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렸을 때 내게 인상깊었던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참 감사하다. 다른 많은 일들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는 것 못지 않게 잘 마무리 하는 게 중요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