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라니 반만 하면 다 한 거 아닌가요?
동물이 자기 서식장소로 다시 돌아오는 본능을 귀소 본능이라 한다. 벌이 꿀을 찾아 멀리 떠나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거나, 개미가 페르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분비해 그 냄새를 맡고 다시 복귀(?) 것이 귀소본능의 사례다.
인간도 동물이니 당연한 건가?인간에게도 이런 귀소 본능이 있는 듯 하다. 귀소본능의 대표적인 행태는 회식 후 벌어진다.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을 보면서, 집에 못 찾아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될 때도 많지만 다들 집에 잘 들어가는 듯 하다. 다음날 퀘퀘한 눈빛으로 출근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가끔 오작동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기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본능은 마찬가지인 듯 싶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귀소 본능을 느끼곤 한다. 집에서 멀어지면 힘들어지다가도 반환점을 돌아 돌아올 때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달리기를 끝냈다는 성취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집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기분 좋게 만드는 요인인 것 같다. 편안한 안식처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사뿐사뿐 달릴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며 한 분께서 질문을 주셨다. 본인은 2km까지는 어떻게서든 달리겠는데 3km 달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크다고 하셨다. 거리를 늘려보고픈데 잘 안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듯 했다. 나는 질문을 주신 분께 딱 1.5km만 달려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달렸던 길을 다시 돌아오라고 권했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1.5km를 평소 뛰는 속도만큼 뛰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돌아오는 1.5km는 걸어도 좋고, 뛰어도 좋으니 편안하게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뒤 그분께서는 3km를 달리고 그 사진을 채팅방에 공유해 주셨다. 혼자의 힘으로 뛸 수 있었다며 기뻐하셨다. 이를 위해 우선은 집 주변을 뺑뺑 돌던 루틴을 버렸다고 한다. 뺑뺑 돌면 1.5km를 갔다가 돌아오는 게 애매하니 우선 집에서 1.5km 떨어진 지점까지 달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물론 반환점을 돌고 나서 힘들었지만 그렇게 하니 3km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 쉬지도 않고 자기만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속도가 미미했지만서도.
사실 이 방법은 내가 달리기를 할 때마다 써먹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마다 나는 어디까지 달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출발한다. 목표 지점까지 가는 것만 생각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우선 생각하지 않고 달린다. 그래서 거리도 목표지점까지만, 그러니까 달릴 거리의 딱 절반만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5km를 달려야겠다고 생각하면 우선 2.5km 정도되는 지점을 생각하고 거기까지만 달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10km를 완주하겠다고 생각하면 5km 지점을 그리고 거기까지 가겠다고 계획하고 출발한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하고 싶어서다. 10킬로미터를 뛰겠다고 처음부터 마음 먹으면 부담스럽지만 5킬로미터를 뛰겠다고 생각하면 가벼워진다.(물론 누군가에게는 5km조차도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10km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는 말이다) 5킬로미터를 뛰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날에는 딱 2.5킬로미터만 뛰겠다고 생각하면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1킬로미터 두 번만 뛰면 대충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욕망에 몸을 맡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더 빨리 뛰든, 뛰다 힘들어 걷든 결국 최종 목표 거리를 다 뛰게 된다. 어쩌면 이게 동물적 귀소본능 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집으로 돌아오는 다른 방법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그만큼 뭐든 시작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인 듯 하다. 달리기 또한 시작이 참 어렵다. 오죽하면 달리는 거리 중 가장 심리적으로 먼 거리가 침대에서 현관문까지라는 말이 나왔을까? 비단 달리기 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많은 일들을 시작하기까지 심리적 저항감을 극복하는 게 꽤나 큰 관건이다. 무엇이든 마음을 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꽤나 큰 결심이 필요하다. 그 시작이 미미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달리기든 뭐든 조금 가볍게 시작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달리기를 할 때 딱 절반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처럼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할 때도 목표를 조금 작게 잡는 편이다.(물론 큰 목표와 바람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많지만 우선 낮은 단계부터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그게 나의 도전을 합리화하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전을 하면서 실패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자구책으로 이런 마음을 먹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합리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거라며 괜찮다고 다시 합리화 하고 있다. 큰 목표라는 부담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말이다. 실제로도 작은 목표로 하나 하나 이룬 것들이 눈덩이처럼 뭉쳐질 때가 몇 번 있었다. 글쓰기가 그랬고, 버킷리스트 워크숍이 그랬다. 반환점까지만 가겠다고 목표를 잡고 달렸던 것이 더 멀리 달리게 만든 것처럼 작은 목표를 갖고 시작한 일들을 하나씩 성취하면서 더 해보고 싶은 추진력을 얻게 됐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안전감이 확보되었달까? 한 게 아쉬워서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반까지 왔는데 끝까지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완성도를 높여 이를 추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당장 행동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너무 높은 수준을 바라기 보다는 시작의 마음은 조금 가벼워좋을 것 같다. 그래야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관문을 나서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끝이 흐지부지되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건 하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달리기가 참 내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딱 반만 뛰겠다는 목표로 달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