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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ug 25. 2021

속도를 올리며 달리는 방법

조금씩 천천히 선을 넘어 봅시다

속도와 방향의 갈림길에서

인생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심리적 위안을 받았다.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하나 둘 꼼지락 거리는 것들에 대해,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이 말로 흔들리는 나를 잡을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방향이니까 긴 범주에서 일희일비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지금와서 고백하건대 방향을 강조한 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셀프 위안이기도 했다. 당장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것이 빛을 발휘할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하며 지금의 삽질이 무용하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이 맞냐라는 의구심이 수시로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에서 지금은 방향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물쭈물하기 보다는 빠르게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책은 지적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물론 개인의 자기계발과 기업의 마케팅은 다른 범주로 생각해야 겠지만 속도가 중요하다는 말이 왠지 개인인 나의 변화에 대해 지적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감정의 동요를 느끼고 말았다. 분명 방향이 중요하다 생각했는데 속도감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동요는 금세 사그라들 수 있었다. 글쓰기의 힘 덕이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선 앞에서 지적한 바대로 내가 하는 일들이 트렌드 코리아에서 지적하는 것과 성격이 달랐다. 나를 바꾸고 새로운 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서두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마케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글 속에서, 내가 하는 것들의 보이지 않던 "성과"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몇 년동안 '나'를 바꾸기 위해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하나 둘 얻은 것들이 분명 있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나의 속도와 방향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있었다. 물론 이것 또한 정신승리고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저런 프로젝트를 해보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결코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씩 진전하고 있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도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모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항상 두려움이 따라왔다. 그 두려움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이 내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것 같은 모호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견뎌내고 눈 딱 감고 뭐라도 시작해 본 것들이 나의 변화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해 주었고, 그런 경험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주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그 지평이 그리 크고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내가 생각하고 있던 울타리를 조금씩 넘어갈 수 있도록 경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달리기도 선을 넘어보자


얼마 전 달리기에 대해 글을 올린 것에 한 이웃께서 댓글로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주셨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 어달 지난 분이셨는데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데 잘 안되는 것 같아 아쉽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었다. 달리기를 하면서 수시로 올라오는 속도에 대한 압박을 극복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선수로 나갈 것도 아닌데 굳이 속도에 집착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필요해 보였다. 달리기를 하면서 내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즐거움이 일상에서 스며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한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즐기기로 했다지만 달리기를 하다 보면 조금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랬다. 천천히 달려보겠다고 즐기면서 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며 달리고 있었다. 속도를 측정할 수 있는 달리기라도 빠르게 해 보겠다는 심산이었을까? 여튼 속도에 집착한 나머지 힘겹게 달리고나서 후회할 때도 여러번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리기에 대한 즐거움은 유지하면서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경계를 확장했던 달리기의 경험이 떠올랐다. 하나 둘 도전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조금씩 넓혀왔던 것처럼 달리기도 스스로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더 빠르게 달리는 게 조금씩 쉬워질 수 있었다. 


달리기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은 우선 속도 자체를 높이는 것으로 가능하다. 우선 꾸준히 자기 자신의 기록을 측정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던 것처럼 내가 어느정도의 빠르기로 가고 있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특히 1km당 몇 분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지 계속 체크하고 나의 몸상태를 확인해 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느정도까지 뛸 수 있을지 가늠이된다. 그러다 기회를 엿보고 일탈을 한 번씩 감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 1km라도 평상시 기록보다 빠르게 달려보는 것이다. 그때의 빠르게는 아주 높은 수준이 아니어도 괜찮다. 평소보다 1초라도 빠르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 또한 "가끔씩" (이게 중요하다) 1km당 뛰는 시간을 조금씩 줄여보려고 노력했던 게 전체적인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전체 거리를 다 똑같은 속도로 달리기 어렵더라도 딱 1km만 지난번 최고 기록보다 1초라도 빠르게 달려보자라고 생각하고 달리면서 시나브로 시간을 줄이다 보니, 어느새 1km를 4분대에도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매번 이리 빨리 뛰는건 아니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뛰는 거리를 늘려갔던 것도 도움이 됐다. 무엇이든 집착은 일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사랑도, 돈도 집착하면 우리를 떠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그것에 연연하기 보다는 조금 더 통 큰 마음을 갖는다면 어느새 사랑도 돈도 따라오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매번 오는 건 아니다) 속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조금씩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갔던 경우가 그런 케이스였다.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오래 달릴 수 있게 체력을 기르니 짧은 거리는 가볍게 뛸 수 있게 되었고, 더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기는 달리기를 위하여


빠르게 달리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듯 싶다. 수렵 생활을 하면서 먹이를 사냥하고 위협에서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육감적으로 빠르게 달리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빨리 달리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닐 듯 싶다. 급히 먹는 밥에 체한다고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애쓰면 오히려 탈이 날 수 있음을 유념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테지만 무엇이든 스스로의 방향에 대해 의심하지 말고 계속적으로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속도에 대해 조바심이 나는 것에 대해서도 인정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에 대해서 조금씩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키포인트는 "조금씩"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갑자기 확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속도를 높여봤으면 좋겠다. 당연한 말일테지만 그 조금씩을 간과해서 가끔씩 탈이 나는 경우가 있으니 항상 그것을 유념하며 달리고 또 새로운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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