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급조절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연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가 “밀당”이다.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인 밀당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애정을 솟게 하는데는 밀당이 꽤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밀당의 기술이 비단 연애할 때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밀당이 중요하다. 아내와 결혼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쌓고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키울 때도 밀당이 필요하다. 윽박만 지르는 게 능사가 아니듯, 감싸 안아주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물론 애정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겠지만 적당한 훈육이 아이들 성장에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을 쓸 때도 독자와의 밀당을 잘 고려해야 한다. 확 관심을 끌었다가 훅 빠졌다가를 반복해야 흡입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밀당’은 많은 관계에서 유효한 듯 하다. 한쪽만 일방적인 관계 맺음은 한계가 있다. 서로 치고 받는 맞이 있어야 관계가 발전한다. 마치 정-반-합을 통해 심오한 진리를 파헤치는 변증법처럼 서로 치고 받는 과정에서(그렇다고 치고 박고 싸우라는 말은 아니다) 심오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밀고 당기며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탄탄한 관계를 위해 중요한 이유다.
밀당이 비단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달리기를 할 때도 나는 “밀당”을 수시로 경험한다. 다만 이때의 밀당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나와의 밀고 당기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달릴 때마다 나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과 그렇지 않은 마음 사이를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이런 밀당 역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밀고 당기기를 통해서 목적지에 다다랐다거나 원하는 기록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이 주는 쾌감이 크다. 달리기를 하면서 “해냈다”라고 느끼는 것이 쌓이면 쌓일 수록 자신감도 얻는다.
하지만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는 비단 성취감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밀당을 통해 나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소위 말하는 “완급조절”을 통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되면서 할 수 있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이것이 나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어 준다.
밀당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페이스 조절이다. 달리기를 할 때, 특히 장거리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몸이 괜찮다고 빠르게 나갔다가는 나중에 퍼지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너무 천천히 달리는 것은 달리는 쾌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의 페이스에 맞춰서 속도를 늘렸다가 줄였다가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야만이 잘 달릴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잘”이라함은 단순히 빠르게 달린다거나 먼 거리를 달리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달리기를 하고 나서도 몸상태가 금세 회복되고 달리기의 기쁨을 오롯이 느끼는 상태라 할 수 있다.
단 한 번의 경험이긴 했지만, 재작년 풀코스 달리기를 경험했을 때 나 스스로를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초반에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35km 지점이 넘어가면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겨우 걸어서 결승선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조금 더 완급조절을 잘 했더라면, 나와의 밀당에서의 텐션을 잘 유지했더라면 더 신나게 결승선에 다다랐을텐데라는 아쉬움이었다. 물론 그 아쉬움이 또 다른 대회를 기약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건 아쉬운 거다.
완급조절을 잘 하고, 밀당을 잘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게 중요해 보인다. 나를 잘 알아야 내 상태에 맞게 행동할 수 있고, 상대방에게 적당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뭐 항상 하는 말이긴 하지만 달리기든 뭐든 나 자신을 잘 아는 것이진정 필요하다.
그리고 비단 완급조절이 필요하고 또 밀당이 필요한 것은 달리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하는 다양한 일들 또한 이런 조절이 중요하다. 적어도 지치지 않고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잘 된다고 우쭐하기 보다는 그럴 때마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필요하고, 잘 안된다고 좌절하기 보다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새로고침을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식투자처럼 엄청난 수익률이 나오진 못하더라도 적금처럼 원금이 보장되는 그래서 이자가 조금이라도 더해지는 그런 형태로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기대로 계속하는 것이기도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완급조절을 하는 것처럼, 일상의 경험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기록이 있는 달리기와 일상의 도전이나 경험은 다른 것이니까. 하지만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의 상태를 잘 알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가려는 태도만 갖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유효한 완급조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페이스 조절을 잘하면서 끝까지 밀어 부칠 수 있을지 한 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달리기를 하면서 속도를 조절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다른 도전들도 그렇게 해보자. 그리고, 이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