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호진 Feb 05. 2022

진로를 고민하는 뉴포티의 삶에서 중요한 것

여전히 공부하며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거짓말


중학교 1학년  일이다. 벌써 25년도  지난 일인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중간고사 시험을 망친 나는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중학생 초반부터 나를 잡으려는  했다 나에게 중고등학교 시절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아버지께서는 30 넘게 설명해 주셨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만 공부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나는 철썩같이 믿었다. 그리고 그날의 훈계 덕분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6년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텼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취업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다.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세대에는 유효한 말이 아니었다. 물론 요즘의 대학생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하긴 했지만, 당시 나는 취업을 위해서 영어공부며 자격증 공부를 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부가 도움이 됐던 건 맞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란 것을 그 때 알 수 있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끝이 없었다. 은행원이었던 나는 매년 의무적으로 연수를 들어야 했고, 시험도 봐야 했다. 회사에 들어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성적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보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아버지께서 건네주신 중학생 때의 말씀이 떠오르곤 한다. 6년만 공부하면 된다고 했는데...



오래 살아서 문제라고요?


회사에서 과장이 되고 어느 정도의 연차가 쌓이고 나서부터 시험의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들어야 할 연수도, 봐야 할 시험도 확연히 줄었다. 확실히 "공부"라는 굴레를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고생도 사서 하는 게 나의 버릇이었을까? 부담이 줄어든다 싶을 때쯤 나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주변에 은퇴하신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아버지부터 보였다. 아버지께서는 교직 생활을 하시고 60대 중반에 퇴직하셨다. 퇴직 이후 아버지는 연금 덕에 경제적으로 불편함은 없으셨지만 하루하루 무료한 삶을 보내셨다. 친구들과 만나서 스크린골프치고, 등산하는 삶을 반복하셨다. 그동안 열심히 사신 덕인지 특별한 취미활동도 없으셔서 매일 지루해 하셨다.


휴직을 하고 우연히 뵈었던 회사 선배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나름 철밥통을 자랑하는 직군에 있어서 정년까지는 어떻게서든 다닐 수 있는 회사였다. 그렇게 50대 중후반에 퇴직을 하시게 되셨는데 그 이후에 방황하시는 게 느껴졌다. 공무원처럼 연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경제적으로도 불안해 하셨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보니 재미 없으면서도 불편한 일상을 보내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을 보면서 갑자기 나의 미래가 훅 들어왔다. 장수가 갑자기 혜택이 아니라 "리스크"로 보였다. 오래 산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돈도 없고 할 일도 없으면 그것처럼 괴로운 상황도 없어 보였다. 100세 시대가 도래한 마당에 50대 중반에 퇴직한다 해도 인생의 반 가까이를 살아야 하니 뭐라도 하긴 해야 할 듯 보였다.



다시 공부를 하다


그때 다시 "공부"가 눈에 들어왔다.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든 중간에 퇴사를 하든 오래도록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6년만 공부하면 인생에 공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대학을 가서도, 취직을 해서도 나를 따라왔던 공부가 마흔이 되어서도 나에게 달라 붙었다. 하지만 이때의 공부는 기존의 공부와는 조금 달랐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다. 주입식에 익숙한 나는 시키는 걸 하는 게 편하긴 했지만 자발적으로 내가 주제를 정해서 공부한다는 게 적극성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니 확실히 기존에 했던 공부와는 사뭇 달랐다. 시험에 연연하지 않았고 학위를 따야 한다는 부담도 없었다. 마흔이 되어서 새로운 일을 찾기 위해 "쯩" 보다는 나 자신의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주된 공부 방법은 "독서"다. 시험을 위해서 암기했던 지난 날의 공부 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읽을 책들을 하나씩 섭렵(?)하면서 나를 돌아봤고 지식과 지혜를 하나씩 쌓을 수 있었다. 시험을 보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양을 머리에 넣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볼 수 있는 눈이 넓어졌다는 것을 매번 공부를 아니 독서를 하면서 느꼈다. 당연히 그렇게 하는 공부라 더 재밌게 할 수 있었다.




김영민 교수가 그의 책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쓴 것처럼 적극성, 자발성이 나의 공부에 대한 태도를 크게 바꾸었다.


공부에는 두뇌와 체력에 못지않게 배우고자 하는 적극성 혹은 자발성이 중요하다. 똑같이 노력했어도 자발적인 자세로 공부에 임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실로 크다. ... 자발성이 장착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지식을 퍼먹어도 머리에 많은 것이 남지 않고 다시 밖으로 빠져 나간다.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저) 중에서"


반갑다 뉴포티!


얼마 전 우연히 "뉴포티"라는 말을 접했다. 이 아티클에서 "40대에도 커리어 고민할 줄 몰랐어요"라는 카피가 눈에 딱 들어왔다. 40대가 되어도 커리어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며, 평생 만들어 가야 한다는 문구를 보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은 폴인멤버십을 가입 해야 다 볼 수 있는 듯 했다)


https://www.folin.co/story/1948


나 또한 마흔 전후로 나의 커리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더이상 금융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직무 전환을 하게 되었다. 미완인 상태지만 모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안정적이라는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짓"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이 나에게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장은 고생스러울수도 있겠지만 백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바라보는 세상에서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가는 데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 또한 든다. 마흔이라 부담도 스럽지만 마흔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독서를 하며 배워가는 것들이 감사하다. 6년만 공부하면 되는 줄 알고 살았던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살짝 웃음도 나오지만 오히려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어렸을 때 6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던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아버지의 하얀 거짓말이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평생 공부할 줄 알았다면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못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는 잊고 새롭게 내 삶을 가꾸며 살아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기꺼이 공부하는 삶을 받아들이려 한다. 언제 공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함께 하는 것으로 배우고 익히는 삶을 즐기며 살아가련다. 새로운 40대의 삶을 위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