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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호진 Apr 23. 2022

실패하며 하나씩 배우는 프리랜서의 삶

불어오는 바람 덕에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 간다


https://youtu.be/pv6qFKM5y_A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바람이 분다>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덕분에 20년 전, 이 노래를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 노래를 자주 들었다. 애인과 헤어져서 이 노래를 자주 들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수시로 흔들릴 때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무슨 연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감정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그래서였는지 이 노래를 들으면 더 감정이 쳐지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위로를 받곤 했다. 맘껏 우울해 하고 나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랄까? 이소라라는 가수의 특유의 감성 덕분이기도 했다. 노래를 들으며 힐링이 되었다.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으니 이런 저런 생각이 났다. 취직을 준비하던 시절에 비하면 상황은 훨씬 좋지만 혼자 나와서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요즘 수시로 내 마음 속에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가끔씩 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그 바람 덕에 시원하기도 하다. 


큰 건이 들어오다


최근에 우울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대규모 워크숍 제안이 들어왔다. 40명은 오프라인으로, 400여 명은 온라인으로 접속하는 워크숍이었다. 50 명이 넘는 규모는 잘 안하는 편인데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강의료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대규모 워크숍이 나에게는 큰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의사를 표현했다. 혼자서 시뮬레이션도 해보았다. 400명 규모의 강의를 위해서 보조 강사들을 섭외해서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를 섭외해야 할까 고민하며 가능한 사람들을 떠올렸다. 참여자들이 만족할 수 있을만한 여러 장치들도 빠르게 고민했다. 어떻게 해서든 꼭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문제는 금액이었다. 이번 케이스는 중간에 강의를 연결해준 업체가 소개한 건이었는데 가격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정된 가격표도 60명까지밖에 없어 기준을 정하는 게 꽤나 난감했다. 결국 별 생각없이 약간의 할인을 붙여서 가격을 네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금액대로라면 한 번 강의하고 한 달은 쉬어도 될 만큼 큰 액수였다. 


그날 저녁, 아무리 생각해도 가격이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내가 스타 강사도 아닌데 너무 금액을 높게 부른 것 같았다. 괜히 불안해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강의를 연결해준 업체 담당자에게 금액은 크게 상관없으니 업체의 예산에 맞추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담당자는 회사와 잘 이야기 해보겠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이미 쏘아버린 살이요, 엎질러진 물이었다. 안타깝게도 처음 제안한 가격이 너무 커서 강의는 취소 되었다. 가격 차이가 너무 커서 이야기 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단다. 


프리랜서에게 수시로 부는 바람


네고가 제대로 안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바람빠진 풍선처럼 축 처지고 말았다. 가장 먼저 든 것은 자책이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서 말도 안되는 금액을 제안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런 식으로 대처했는지 바보같아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합리적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을 해봐야 했었다. 400명이라는 직원에게 기존의 방식대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조금 변형해서 진행해야 했고 그러면 워크숍이라기 보다는 강연에 가까운 형태가 타당했다. 가격을 부르기 앞서 업체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것도 반성할 부분이었다. 강의를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들었으면 훨씬 대화가 수월했을텐데 말이다.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렀던 것도 문제였지만 그 상황에서 합리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덕분에 며칠동안 심한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혼자 쉬고 있을 때마다 그 건이 생각났다. 안그래도 요즘 강의 비수기인데 그것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런 와중에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들었으니 더 마음이 심란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배우고, 또 배우는 삶


하지만 노래는 나를 심란하게만 하진 않았다. 대학시절 위로를 받은 것처럼 이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안정이 되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마음이 편해졌다. 


"500명 강의가 들어올 겁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속상한 마음을 지인에게 전하니 지인은 곧 500명 강의가 들어올 것이라는 희망찬 이야기도 들려줬다. 물론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위로로 해 준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에 내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것을 (언젠가) 500명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다음에 잘 하면 되니까!


덕분에 이번 경험이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 준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물론 당장의 이익으로 연결되진 않았지만 앞으로 다가오게 될 다양한 새로운 경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어떤 경험도 쓸모 없는 경험이 없다고 하던데 이번 경험 또한 좋은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덕분에 많은 것도 배웠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렇게 매번 깨지고 배우는 게 프리랜서의 삶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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