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예전과는 다른 직장인으로 살겠지요?
휴직을 한 지 벌써 4개월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휴직을 하고 첫 두어달은 별 느낌이 없었다. 마냥 좋기만 했다. 혼자 유유자적하며 보내는 낮시간도 좋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바쁘기도 했지만 배우는 것도 많았다. 이것저것 일을 벌이며 재미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내가 휴직 상황임을 인지한 순간이 왔다.
3월 21일, 처음으로 휴직기간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았다. 1월 말에 휴직한 나는 2월까지는 정상 수준의 월급을 받았기에 돈에 무감각했었다. 3월 월급날이 되고 통장에 찍힌 월급액을 확인하고서야 내 상황에 대해 인지할 수 있었다. 휴직 급여는 1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일도 안하는 내게 회사에서 복지차원에서 주는 월급이었기에 감사해야 했지만, 내 경제적 자유의 수준이 어떤지 현실에서 느끼게 되자 다소 불안해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한 게.
돈도 못 버는 주제에
휴직을 허락한 아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단언컨대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내를 볼 때마다 돈도 못 번다는 사실이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회사에서 고생하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거 하며 지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됐고 그런 내가 싫기도 했다.
휴직을 하고 경제적인 부분은 신경쓰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나 때문에 살림이 쪼들리는 것 같아 자꾸 신겨이 쓰였다. 쌓여가는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나의 이기심 때문인 것 같았다. 괜한 나의 선택 덕분에 가계 살림이 힘들어 지는건 아닌지 걱정됐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문득 복직이란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복직을 하면 예전과 다르게 회사 생활을 할 것같다. 이런 저런 복직 후의 생활을 상상도 해봤다.
월급을 받는 이상 열심히 해야겠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발버둥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승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No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시차출근제를 활용해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고, 저녁에 2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소비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는 게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순 없고,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다 할 순 없겠지만, 여유롭게 경제 생활을 할 순 있을 것이다. 복직이 꼭 나쁜 선택은 아닐 수도 있어 보였다.
최근에 만난 사람들도 충고를 하며 복직을 권유하기도 했다. 1인 기업가로 살기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며, 복직해서 회사를 다니다가 하고 싶은 일을 도모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사실 맞는 이야기다. 회사 밖에서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막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적당한 시기에 복직을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복직을 해서 내 꿈을 찾는 게 더 멋진 스토리같기도 했다. 작가가 된다면 그리고 강의하는 사람이 된다면 좀 더 극적인 스토리가 필요할텐데 지금 너무 편안하게, 꿈을 찾아 가는 게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했다.
호기롭게 휴직하겠다고,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보겠다고 했는데 불과 4개월만에 복직을 생각하게 된 것은 왜그랬을까?
돈 때문이었을까?
현실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 스토리를 만들고 싶어서였을까?
돈 때문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내게 알려준 회사 밖 세상의 험난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로 복직을 생각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여러 생각의 끝에는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극복하고 싶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휴직이 끝날 때쯤 아무것도 이룬 게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종종 나를 두렵게 만든다. 뻔뻔하지 못해서일까? 지금의 이 시간이 나 혼자 즐기는 걸로 끝날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야심차게 시작한 도전이었지만 빈손으로 회사로 돌아가면 아내 얼굴을 제대로 못 볼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최근 읽은 <타이탄의 도구들>이 생각났다. 작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정의해보라고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 최악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불안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던 생각들이 돌연 긍정적인 상황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작가가 이야기 한 것처럼 나 또한 최악의 상황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해봤다.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의 최악은 무엇일까?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빈손으로 회사로 돌아가는 것 정도 아닌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최악이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빈손으로 돌아가서 1년 넘게 돈을 못 번다고 우리집이 난리가 나나?
그 이후에 더 열심히 살면 되는거 아닌가?
휴직기간동안 내가 배운 것들이 언젠가 쓸 날이 오지 않을까?
회사에 돌아간다 해도 예전처럼 다닐 것도 아닌데 그게 뭐 얼마나 힘든걸까?
빈손으로 회사에 돌아가는 걸 두려워했는데, 빈손으로 회사에 돌아가는 게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생각하다보니, 최악이라 한들 생각보다 별 게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싫지만, 그래도 회사라는 버팀목이 나를 지지해주고 있으니 최악의 상황이라 한들 진짜 최악은 아니었다. 최악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기왕 시작한 거 좀 더 즐겨도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뻔뻔해져도 될 것 같았다. 월급이 얼마 들어올 지 몰랐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걸로 흔들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아무 성과도 없이 회사에 다시 돌아가면 어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성과가 없더라도 내가 하루하루를 사는 동안 쌓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나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두려울 만큼 크게 걱정할 건 아니다. 걱정하기 보다는 즐기며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냥 바람에 잠깐 흔들렸던 걸로 생각하려고 한다. 복직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복직을 한다 해도 두려울 게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짜피 최악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기왕 시작한 거 좀 더 즐겨보기러 했다. 뻔뻔하게 말이다.
조울증 환자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