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웨이 - 돌아가는 길의 정서에 대하여

몇 개의 키워드로 읽는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 >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가 의외의 신선함과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 Sideways>가 그 중 하나. (우연히 알게 된 궁금하고 끌리는 영화는 요즘 넷플릭스 검색으로 이어진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겹겹이 얇은 층을 두른 몽블랑 페스트리처럼 천천히 한 겹씩 떼어 먹고 싶은 매력을 품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혹은 보고 난 후) 여러 단상과 이미지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맴돌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하나의 관점으로 꿰어지지 않는 파편적 단상들의 병치는 때로 그 병치의 총합을 모종의 관점처럼 보이게도 하니까.


# 옆길

사이드웨이를 우리말로 옮기자면 옆길 정도가 될까. 정주행을 표상하는 ‘대로’가 아닌 사이드웨이. 왜 옆길인가. 흥미로운 제목만큼 포스터도 재미있다. 누워 있는 와인병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 주인공 마일즈는 소설가를 꿈꾸는 중등 영어교사이다. 전문가 수준의 와인 애호가이며, 십자말 풀이를 즐긴다. 이혼한 전처 빅토리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고,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으며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친구 잭과 여행을 떠나려는 참이다. 그는 어떤 길과 마주치게 될까. 직선으로 쭉 뻗은 신작로(新作路)보다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구도로(舊道路)일 확률이 높다. ‘돌아가는’ 길은 느리지만 우리 삶에 더 가까운 풍경을 보여준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 현재의 쾌락 vs. 이상적 미래

영화는 마일즈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LA까지 급하게 차를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결혼을 1주일 앞둔 친구 잭과 (총각 파티 겸) 와이너리 여행을 떠나는 마일즈. 그들의 대조적인 성격은 출발을 기념해 와인을 따는 장면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희귀해서 아껴둔 92년산 바이런을 최적의 온도에서 마셔야 하는 마일즈. 피노 누아 100% 싱글 빈야드. 더는 나오지 않는 이 귀한 와인을 미지근한 상태에서 마실 수 없다. 아직 따지 말라는 마일즈의 말을 잭은 무시한다. ‘지금-여기’에서의 감각적 쾌락이 우선인 잭은 (와인이 얼마나 귀한 것이든,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이) 일단 뚜껑을 따고 맛을 보는 스타일. 즐기는 대상에 관해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섬세하게 음미할 줄 아는 능력을 갖는 것은 잭에게 중요하지 않다. 잭이 현재의 쾌락을 중시하는 인물이라면, 마일즈는 이상적 미래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것도, 와인을 묵히는 것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시선을 던지는 행위이다. 결국 '밸런스'의 문제가 아닐까. 지금-여기의 물질적, 세속적 삶에 대한 긍정을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너머의 것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


# 픽션 vs. 논픽션

“논픽션은 배울 점이 많지만, 픽션을 읽는 건 시간 낭비예요.”

마일즈가 소설을 쓴다는 말을 듣고 잭의 약혼녀 크리스틴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픽션은 허구이고 허구를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세간의 통념이 슬쩍 드러난다. 허구를 쓰는 극중 마일즈와 그 마일즈의 이야기(를 다루는 허구의 영화)를 보는 우리도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걸까.


중요한 것은, 하나의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세계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다큐멘터리 이야기 구조를 만든다는 것은 그 세계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며, 어떤 타인의 다큐멘터리가 말하는 바를 알아챈다는 것은 그 질서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 김옥영, <다큐의 기술>, 문학과지성사, 2020, 86쪽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이야기(픽션이든 다큐이든)는 하나의 세계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타인이 구조화한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고, 나의 세계(이야기)를 돌아보며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 우리가 픽션(혹은 논픽션)에 끌리는 이유는 그 세계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재발견하기 때문이다.


# 재즈

재즈와 와인. 언젠가부터 이 두 단어의 조합은 자연스러워졌다.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프인 와인과 함께 전반에 걸쳐 잔잔히 흐르는 재즈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롤프 켄트(Rolfe Kent)가 작업한 곡들 대부분이 일관된 리듬과 밝은 분위기를 띠며 흐르는데 특히 색소폰과 베이스 사운드가 도드라지는 메인 타이틀곡 「Asphalt Groovin’」과 마일즈의 테마곡 「Mile’s Theme」이 인상적이다. 서사를 압도하거나 방해할 만큼 튀지 않으면서도 인물과 배경을 더 풍부하고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영화음악의 미덕이다.


# 타인의 취향: 와인

첫 번째 양조장에 들러 잭에게 시음 방법을 알려주는 마일즈의 대사를 보자.

"우선 잔을 들고 빛에 비춰서 와인의 색깔과 투명도를 살펴. 농축도를 알아보는 거야. 이제 잔을 기울여. 입구 주변의 색 농도를 보면 양조 시기를 알 수 있는데 레드와인을 볼 때 특히 중요해. 잔에 코를 넣어봐. 잔 깊숙이. 감귤, 딸기 약간, 패션푸르트. (귀를 막고 집중하며) 또 미약하나마 아스파라거스 약간에 희미한 에담치즈 향이 섞여 있어."

잭이 단지 딸기 향만 맡을 뿐인 것에 비하면(그는 시음 중에도 껌을 씹는 행태로 마일즈를 경악케 한다), 마일즈는 전문가 수준이다. 와인이라는 특정 대상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문가적 고급 취향은 단기간에 길러진 태도가 아니다. 오랜 시간 몸에 스민 습관과 삶의 양식에 가깝다.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짓는다"라고 말했던 부르디외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제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하다. 마일즈는 자신의 고급 취향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구별 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실제적 계급과 추구하는 계급의 차이만큼, 처한 현실과 지향하는 이상 사이의 괴리는 결핍을 낳는다. 결핍을 메우고자 하는 행위는 과도한 몰두 혹은 집착을 동반하지 않던가.



# 타인의 취향: 어휘

히칭 포스트(Hitching Post)라는 마일즈의 단골 레스토랑에 도착해서 그곳 직원이 추천하는 와인부터 마셔보는 마일즈. "농도가 짙고 향이 그윽하네요(tight and good concentration)."

잭은 단지 걸쭉하다(tight)라는 말로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뿐이다. 어휘의 차이는 표현의 차이를 낳는다. 표현의 차이는 취향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 타인의 취향: 수집

히칭 포스트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마야와 마일즈를 이어주고 싶은 잭. 잭의 관심은 오직 여자이다. 토요일 결혼식 전까지 총각 시절의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그는 (양조장에서 카베르네를 맛보며 평을 늘어놓는 데 집중하는 마일즈와 달리) 와이너리 직원 스테파니에게 작업을 거는 데 집중한다. 영화 후반부에 스테파니와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난 직후에도 잭은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여자에게 다시 수작을 거는 인물이다. 이를 역겨워하는 마일즈에게 잭은 이렇게 말한다.


: 너는 문학, 영화, 와인은 이해하면서 왜 친구의 성욕은 이해 못 하니?


전처 빅토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잭에게 들려주면서도 마일즈는 와인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여기로 소풍 와서 95년산 오퍼스 원을 마셨지. 연어랑 아티초크를 안주 삼아서. 취향이 고급인 여자야. 이탈리아 와인도 섭렵했고.” 그러나 한 달 전쯤 빅토리아가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일즈는 절망한다.


스테파니와 잭, 마야와 마일즈는 잭의 노력에 의해 성사된 더블데이트를 즐긴다. 식당에서 스테파니의 집으로 자리를 옮긴 네 사람. 마일즈는 스테파니의 와인셀러 컬렉션에 리슈부르(Richebourg)가 있다는 말에 놀란다. 수집한 와인을 보고 그 사람의 취향을 평가하는 습관. 마야가 고른 와인은 시라(Syrah) 2001 앤드루 머리(Andrew Murray). 나쁘지 않다. 어떤 와인을 수집했느냐는 마야의 질문에 그는 장식장에 몇 병 정도 모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너무 비싸서 한 병씩. 그중 가장 아끼는 것은 ‘61년산 슈발 블랑’이라고.


마야: 그걸 장식장에 모셔뒀어요?

마일즈: 네.

마야: 가서 가져와요, 빨리요.

마일즈: 그러고 싶네요.

마야: 어디서 봤는데 지금이 딱 좋을 때라면서요.

마일즈: 맞아요.

마야: 아껴두는 이유라도 있어요?

마일즈: 글쎄요, 특별한 순간에 마시고 싶었거든요(special occasion with right person). 결혼 10주년에 따려고 했는데......

마야: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의미심장한 대사이다.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난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모든 결정적이고 특별한 순간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인지도. 바로 오늘, 바로 지금. '찰나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지혜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 오늘 - 어제의 다음 날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잭과 스테파니와 달리 나란히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마일즈와 마야. 마야가 마일즈의 소설에 관심을 보이며 소설 제목을 묻는다. ‘어제의 내일(The day after yesterday)’이라고 대답하는 마일즈.


마야: 아, 그렇다면 오늘(today)이네요.

마일즈: 따지자면 그렇지만......

마야: 그럼 그게 죽음(death or mortality)에 관한 건가요?

마일즈: 꼭 그렇진 않아요.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거든요.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사건이 병렬 구조로 벌어지다가 ‘로브그리예식 미스터리’로 빠져요. 딱히 해소되는 것은 없죠.


오늘,을 오늘이라고 곧바로 표현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것도 사이드웨이일까. 현재를 미래의 개념으로 에둘러 말하는 방식에서 삶을 대하는 마일즈의 태도를 짐작하게 된다. 그에게 ‘현재’라는 감각은 다소 퇴화한 것처럼 보인다. '어제의 다음 날'이라는 소설 제목 또한 감독이 의도적으로 깔아놓았을 것이다. 현재를 직시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태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마음. 아내는 떠났고, 다른 남자와 재혼했다. 소설은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과거’의 아내에 집착하면서 ‘미래(다음 날들)’에 가망을 거는 마일즈.

휙 지나가는 듯 보이는 대화이지만, 마일즈가 여자 앞에서 숙맥임을 보여주는 단순한 장면으로만 보기엔 뭔가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알랭 로브그리예라니. 누보 로망 스타일의 소설이라면 대중적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그의 소설을 읽어볼 의향이 있는 마야. 과연 누가 그토록 그의 소설에 관심을 보일 것인가. 마일즈가 말하는 자신의 소설처럼 삶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다양한 사건이 병렬 구조로 펼쳐지는 미스터리인지도 모른다. 딱히 해소되는 것은 없는 이야기. 그러나 누군가에겐 궁금하고, 읽고 싶은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 마일즈에게 '어제의 다음 날'은 바로 마야가 아닐까.


# 피노누아(Pinot Noir)의 잠재성

마일즈는 거의 광적으로 피노누아를 예찬한다. 그런 그에게 마야가 묻는다. 왜 피노를 좋아하는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사가 나온다.


마일즈: 피노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이 얇아 기온에 민감하고 금방 익어버리죠. 카베르네는 튼튼한 품종이라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방치해도 잘 자라지만 피노는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하죠. 토양을 많이 타는 아주 까다로운 품종이에요. 피노를 재배하려면 인내와 애정을 쏟아야만 하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주어야만 (to understand Pino’s potential : 피노의 잠재성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지만,으로 번역하고 싶다)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곳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카베르네도 나름 훌륭하지만 피노와 비교했을 때 왠지 평범하게 느껴진다고요.


이렇게 말하는 마일즈를 보면 마치 피노를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동일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민감하고 세심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사람. 토양을 많이 타는 까다로운 사람. 인내와 애정을 쏟아야만 하는 대상. 그 포텐셜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사람. 마일즈의 표정은 그러한 애정과 보살핌을 갈구하는 사람의 것처럼 보인다. 마일즈를 지긋이 바라보는 마야. 그녀가 마일즈의 토양이 되어줄 수 있을까.


# 문학하는 마음

와인 이외에 마일즈와 마야를 이어주는 또 하나의 끈이 있다면 '문학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일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고, 마야는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마야: 와인을 마시면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죠. 전 와인이 겪었을 삶(life of wine)을 생각하곤 해요. 와인은 살아 있어요. 포도가 자라던 해에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하곤 하죠. 햇볕은 어땠을지 비는 내렸는지. 포도를 기르고 수확했을 사람들 생각도 해보고요. 오래된 와인이라면 지금쯤 몇 명이나 저 세상 사람일지......또 와인은 변화무쌍(evolves)해요. 병을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와인은 살아 있으니까요. 끊임없이 발전하며 변화를 거듭하죠. 당신의 61년산 슈발 블랑처럼 절정을 찍고는 피할 수 없는 쇠퇴에 접어들어요. 그리고 맛도 정말 끝내주고요. (이때 마야는 마일즈의 손을 살며시 잡는다.)


그들은 분명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와인에서 생의 사이클을 보는 마야의 시선은 작은 것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통찰을 품고 있다. 와인에 빗대 '사람'과 '삶'과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은 따뜻한 아날로지(analogy)로 남는다.


# 기다림

지난 3년간 써온 소설을 출판사에 보낸 이후 마일즈는 계속 연락을 기다려왔다.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출판이 거절당하자 마일즈는 좌절한다. 기묘하게 서글프면서도 웃긴 신세한탄 장면. 페이소스를 다루는 감독의 독특하고도 지적인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자살한 유명 작가들이 소환되고, 직유와 은유가 날것으로 출몰한다.


마일즈: 난 자살할 처지도 못 돼. 생각해봐. 헤밍웨이, 섹스톤,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전부 책 내고 자살했어.

: <바보들의 결탁>을 쓴 사람을 봐봐. 책을 출판하기 전에 자살했지만 유명하잖아.

마일즈: 참 고맙군.


마일즈: 난 창문에 묻은 지문 같은 존재야.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라고.

: 바로 그거야, 방금 그 말 얼마나 근사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난 그런 표현 못 해.

마일즈: 나도 못해. 부코스키(찰스 부코스키)가 한 말이야.


파티는 끝났다. 잭은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 스테파니에게 맞아 코뼈가 부러지고, 마일즈는 자신의 소설이 곧 책으로 출판될 거라는 말이 거짓이었음을 마야에게 고백한다.


잭의 결혼식에서 전처 빅토리아를 만나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한번 좌절하는 마일즈. 그는 곧바로 집으로 가 무언가를 뒤져 꺼낸다. 결혼 10주년에 따고 싶어 아껴두었다던 61년산 샤또 슈발 블랑.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마시고 싶었던 이 귀한 와인을 그는 홀로 패스트푸드점에서 1회용 컵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켠다. 집착했던 미래의 모습은 무너지고, 값비싼 와인은 싸구려 음료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상으로 돌아온 마일즈. 어느 날 마야에게서 온 전화 음성 메시지를 듣는다. 마일즈가 이전에 건네주었던 소설 원고를 다 읽었다고. 그리고 좋았다고.

"단어 선택이 탁월하더군요.(You were so good with words.)"

말을 다루는 능력이 탁월해요, 정도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마일즈가 평소 구사하는 어휘가 잭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대사를 통해 짐작했으니까.


마야(음성): 출판이 안 되면 어때요. 삶의 회한을 잘 그려냈어요. 실제로 겪었던 일인가요? 힘들었겠어요. 여동생 인물은 구제 불능이던데요. 결말이 좀 헷갈리는데 아버지가 진짜 자살한 건가요? 궁금해 죽겠어요. 어쨌든, 요즘 여긴 쌀쌀하고 비가 와요. 그래도 난 겨울이 좋아요. 이쪽으로 올 거면 미리 연락해요. 이사할지도 몰라요. 책 잘 읽었어요. 포기하지 말고 글 계속 써요.


“Don’t give up Miles the writing.” 어쩌면 그를 구원해줄 이 한 마디. 그녀는 그의 토양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맞았다. 작가가 조심스레 반영한 내밀한 개인서사를 읽어내고, 공감하고, 궁금해하는 동시에 계속해볼 것을 격려하는 사람. 그런 존재가 곁에 단 하나만 있어도 족한 것 아닐까. 피노의 포텐셜을 알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 문을 두드리다

마지막 장면은 마일즈가 그녀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다. 문을 두드리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는 경계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의 공간에서 타인의 공간으로 건너가는 문지방 영역. 오랜 기다림과 망설임 끝에 소통의 신호를 타전하는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행위.


이 영화의 표면적인 인상은 이렇다. 와인, 재즈, 캘리포니아의 밝고 탁 트인 포도밭, 위트 넘치는 대사, 좌충우돌 로맨스 코미디. 조금 더 심층으로 들어가보면,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여러 층위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전언을 읽고자 하는 마음도 문을 두드리는 제스처와 닮아 있지 않을까.


# 다시, 사이드웨이

마일즈가 돌고 돌아온 길. 지금 그는 마야의 집 문 앞에 서 있다. 사이드웨이는 애틋하지만 정겹다.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다양한 풍경들을 첩첩이 품고 있으므로. 우연과 곡절과 다단한 감정들. 돌아가는 길의 정서는 우리 삶의 풍경과 닮았다.


(2020-12-31)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