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왕가위 스타일

feat. 장이지 시집 <레몬옐로>

<아비정전>을 다시 보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덕분에 왕가위(요즘엔 왕자웨이라는 외국어 표기법에 더 충실한 듯) 영화 <아비정전>을 다시 보았다. 다시 보았는지 처음 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Days of Being Wild라는 영어 제목이 낯설다. 희미한 이미지, 혹은 몇 개의 미장센으로만 남은 영화들. 홍콩 느와르는 좋아하지 않았어도 왕가위 영화는 챙겨 보았던 기억. 데뷔작 <열혈남아>(1987)를 시작으로,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4), 동사서독(1994), 타락천사(1995), 춘광사설(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로 이어지는 왕가위의 전성시대. 그 10년이 감독의 화양연화였는지도 모른다. (왕가위의 입봉작 <열혈남아>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90년대에 20대를 통과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왕가위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 흐름에 동참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같은 것이 작동한 걸까. 왕가위 영화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열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일까. 다시 보는 왕가위 영화들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왕가위'라는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형식이 내용을 견인한다,는 이치를 나는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니까 당시 (20대였던) 나의 눈에 비친 왕가위 영화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었다. 별다를 것 없는 내용(대개 청춘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될 수 있는)을 굉장한 스타일로 꾸려내는 탁월한 감각. 그 스타일이 소설로 따지자면 문체일 텐데. 문체(=스타일)보다는 서사 자체가 주는 힘에 더 경도되었던 때라, 남녀 애정지사를 주축으로 펼쳐지는 스토리에 나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20년이 지난 지금 왕가위 스타일에 새삼 감탄하는 건, 내용보다 형식에 눈을 돌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마치 정용준의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흥과 비슷하달까.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정용준의 단편 <떠떠떠, 떠>를 말하고 싶다. 내가 소설가 정용준을 알게 된 첫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떠떠떠, 떠>의 문장 하나 하나를 감탄하며 음미했는데, 사실 서사 자체는 별 게 없었다(별 게 없다는 게 별 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렇게 함부로 단언하는 것도 마음 편치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말을 심하게 더듬는 화자 ‘나’와 언제 어디서 발작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간질 환자 ‘그녀’ 사이에서 싹트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 줄거리를 요약하라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함께 이 단편을 읽었던 사람이 ‘안타까운 청춘의 사랑을 다룬 좀 시시한 내용’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약간 흥분하여) 작가가 천착한 문장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다소 길게 늘어놓았다. 그래, 그런 적이 있었지.


어렸을 때 실제로 말을 더듬었던 소설가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였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언어에 대한 작가의 천착은 분명 경험(결핍과 상처)에서 우러나온 것일 테지만, 말을 더듬었다고 모두가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건 작가의 경험과 재능, 사색, 의지와 분투가 빚어낸 스타일인 것이다. 집요한 몰입의 흔적이 스며나오는 문장을 읽는 것은 모종의 감탄과 흥분을 불러온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스타일리스트 왕가위


이런 식의 뒤늦은 각성은 왕가위 영화에도 적용된다. 탐미주의자,라는 수식이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현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카메라워크와 미장센에 집착한 스타일리스트임을 지시한다는 점에선 이의를 달기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탐미적 추구를 왕가위 영화의 고유한 문법으로 설정하면, 내용(=서사)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형식(=스타일)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좀더 폭넓게 생겨나는 게 아닐까. 내가 정용준 소설을 서사보다는 문장의 스타일로 받아들인 것처럼. 나는 '형식이 견인하는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타일이 주는 오묘한 전달 효과(그것은 특정 메시지일 수도, 이미지 경험일 수도 있다)를 생각해본다. 예컨대 이런 것들. <아비정전>에서 주요한 모티프로 나오는 시계 장면들, 비오는 밤의 풍경, 빛보다 그림자, 공중전화 앞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유덕화의 모습, 머리를 빗어넘기는 장국영(과 마지막 장면에 잠깐 등장하는 양조위의 같은 동작) 등등. <중경삼림>은 또 어떤가. 1부에서 금발 가발에 선글래스를 쓴 임청하의 모습이 천장 거울에 겹겹이 비치는 장면, 파인애플 통조림의 이미지, 보스를 죽이고 조직원들에게 쫓기다 잠든 임청하의 구두를 닦아주는 금성무, 1부와 2부의 인물들이 우연히 마주치는 지점, 무엇보다 2부를 지배하는 두 개의 음악, 마마스 & 파파스(Mamas & Papas)의 'California Dreamin'과 왕비가 부른 몽중인까지.


왕가위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하는 시계. 시간과 기억은 그의 영화에서 주요한 테마이다.


시간, 어른 아이, 독백


마음이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 사물이 되어 만지면 아픈 날이 있어요. / 세탁기가 울어서 방에 홍수가 나고 / 인형은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는 날이 꼭 있어요. // 방이 눅눅한 마음일 때 /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어요. / 그럴 때 왕자웨이(王家衛) 영화를 보죠. / (중략) 경찰 223이 호텔방에서 잠든 그녀의 신발을 벗겨줄 때 / 고단한 신발이 침대 밑에 놓일 때 / 그건 그녀의 아픈 마음이야. // 어른들은 모두 서툰 어른이란 걸 알게 되는 날이 있어요. / 그날은 마음이 사물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날이죠. / 그리고 말예요, / 그날은 내 친구가 없는 날.


- 장이지, <레몬옐로>, 문학동네(2018), '중경삼림(重慶森林)' 일부, 92쪽


장이지 시집 <레몬옐로>를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90년대식 낭만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욕망과 기억을 환기시키는 몇몇 시들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예전 홍콩 영화의 이미지를 가져와 지금을 말하기도 한다. 관금붕(關錦鵬)의 영화 <란링위(阮玲玉)>(1991)나 왕가위 영화 <중경삼림>을 제목으로 삼은 시들. 그외에도 이창동의 <시>라든가 60년대 호금전의 <용문객잔>, 데라야마 슈지의 70년대 영화가 소환되기도 한다. 추억의 영화로 촉발된 이미지가 현재의 시간과 뒤섞이며, 시간의 아득함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서툰 어른의 표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 미숙한 어른 남자는 시인 자신이기도 하겠지. 왕가위 영화 속 인물과도 닮은.


그녀는 내게 절교 편지를 보낸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에둘러 아직도 내게 오고 있다. 모래바람이 뒤덮은 하늘이 느리게 녹아내리고 하루가 또 검게 타버린다. 누더기가 된 밤이 바람에 펄럭인다. (중략) 그녀는 내게 절교 편지를 보낸다. 독표(毒鏢)처럼 그것은 아직 내게 오고 있다. 나는 편지가 오는 속도로 편지에서 달아나는 초절한 무공을 익힌다.


- 같은 시집, '용문객잔-연남동' 일부, 66쪽


시집의 뒷부분엔 전형적인 해설 대신 자신의 시에 대해 시인이 짧게 각주처럼 달아놓은 Link가 부록처럼 실려 있다. 격의 없이 건네는 '시인의 말'처럼 보인다. 왕가위를 떠올리며 이 시집을 다시 찾았으니, '왕자웨이'에 대한 글이 우선 눈에 들어올 수밖에.


자웨이(王家衛) : 1990년대에 이십대였던 사람들에게 이 이름은 쉽게 잊힐 수 없다. 홍콩 반환, 세기말, 디아스포라 등의 키워드와 함께 금색 가발을 쓴 린칭샤(林靑霞)의 표상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흔들리는 영상 위에 입혀진 배우들의 내레이션을 듣고 있노라면 누군가의 고백을 듣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의 영화들을 본다. 전혀 질리지 않는다.


- 같은 책, 'Link' 중에서, 123쪽


<아비정전>을 다시 보고 난 다음에 이 글을 다시 읽어서일까. 발 없는 새,에 관한 아비(장국영)의 독백을 겹쳐 떠올리며 나는 고독한 존재들이 읊조리는 낮은 고백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무수히 생성되고 있을 저마다의 목소리들. 왕가위 스타일의 재발견은 때아닌 수확이다. 20년의 세월이 무색한 세련된 감각. 그만의 고유한 문법.


화양연화 이후의 영화들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의 90년대 영화들을 다시 봐야 할 영화 목록에 올려놓긴 했어도, <일대종사>(2012)와 같은 최근작을 애써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조만간 <해피투게더>가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된다고 한다. 장국영과 양조위의 멋진 호흡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 마음 속에 왕가위 붐이 다시 일어나긴 일어난 모양이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각도와 시선으로 왕가위 스타일을 바라볼 수 있는 렌즈를 장착하고.


(2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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