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무라카미 류의 <69>에 부쳐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 너 크림 아니?

크림? 아이스크림?

짜식, 크림은 영국의 밴드 이름이야. 그것도 몰라?

몰라.

그럼 너, 랭보는 아니?

그 사람도 밴드?

바보! 시인이야. 한번 읽어봐. 자, 여기 있어.

나는 아다마에게 랭보의 시를 보여주었다. 그때, 아다마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어야만 했다. 아다마는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다마의 인생은 바로 그 순간에 바뀌고 말았던 것이다.


- 무라카미 류, <69(식스티 나인)> 중에서




그랬다. 소설 속 배경은 1969년이었지만, 20년이 지난 한국의 어느 교실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 당시로선 그리 흔치 않던 이어폰을 끼고 쉬는 시간마다 혼자 뭔가를 듣던 여자애. 그 아이의 이름은 가물가물하지만, 누가 봐도 있는 집 딸처럼 보이던 옷차림과 가무잡잡한 피부, 호리호리한 몸에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가진 이국적 외모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내가 그 애에게 물었다. 뭐 들어? 한쪽 이어폰을 빼며 그 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메탈리카.

......

메탈리카 몰라?

몰라.

그 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메탈리카가 뭔지 설명도 안 해주고 들어 보라는 말도 없이......하지만 그런 모습까지 근사해 보였다. 얘는 다른 애들과 다르구나.


나는 다른 애들과 달라. 읽는 책도, 듣는 음악도. 이런 모종의 우월감에 빠져 나의 결핍을 감추고 메꿔나가던 시기였다. (그게 결핍을 채우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것도 모른 채)


어쨌든 내가 모르는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자존심이 좀 상했다. 독서실을 끊어놓고 자정까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프로를 들으며 또래 애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 믿)는 음악을 듣는 나를 우쭐해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당시 클래식과 오페라를 공부하듯 듣고 있었다.) 이후 어떤 경로로 메탈리카를 찾아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음악 듣기 역사가 메탈리카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되었다는 점. (당시엔 없던 말이었지만) 소위 '덕후'가 된 것이다. Rock Forever! 혹은 Rock Will Never Die. 뭐 이런 거.


메탈리카로 '입문'한 나는 (나 같은 애들이 밟는 비슷한 수순을 따라) 용돈을 아껴 테이프(나중엔 CD)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공부해야 할 록의 계보는 길었고, 사야 할 앨범들도 너무 많았다. 멜론이 없던 시절, 원하는 곡을 듣기 위해서는 앨범을 사야 했다. 60-70년대 헤비 블루스와 하드록에 열광하던 나는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 80년대 헤비메탈을 거쳐, 90년대 펑크와 얼터너티브 록을 즐겨 듣게 되었다. 새벽 두 시에 시작하는 전영혁의 음악 프로를 듣기도 했다. (전영혁을 아시나요? 아신다면 당신은 음악 좀 들었던 사람.) 록이라는 장르는 당시 나를 지배하던 정서와 맞아떨어졌다. 저항이니 분출이니 자유니 하는 단어들로 록을 이해하기도 전에, 록이 사운드 자체로 내게 명령했다. 나를 들어!


한 시대를 풍미한 록이지만 듣는 사람만 듣는 장르였다. 마이너리티 감성은 마이너리티 감성을 알아보는 법. 시간이 한참 흐르고도 한때 내가 열광했던 밴드나 뮤지션(주로 기타리스트), 앨범이나 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우리는) 다소 흥분해서 (일 얘기 따위는 잊고) 들뜬 분위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둘 사이엔 묘한 동류의식(동질감) 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저 <식스티나인>에 나오는 장면은 여러 각도로 과거의 장면들을 소환하는 동시에 작가에 대한 친밀감을 불러냈다는 말씀.


무라카미 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설 속 주인공 겐이 고등학교 내 괴짜로 통하며 놀자파(술, 여학생, 담배, 싸움), 록파(록, 미술, 예술), 정치파(전공투, 마오쩌둥, 체 게바라)에 두루두루 발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작가 자신을 그려낸 것 아닌가. 작가가 고등학생이던 69년, 록 밴드를 결성하고 친구들과 8mm 단편영화를 만들고 유럽의 68혁명에 영향받아 학교에서 바리케이드 봉쇄를 주도한 이력까지. <식스티나인>은 무라카미 류의 당시 경험을 담은 자전 소설인 셈이다.


화자 '나'(주인공 '겐'이자 무라카미 류 자신일)는 (고다르 영화를 한 편도 본 적 없지만) 고다르와 누벨바그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친구 아다마에게 랭보 시집에 덧붙여 '크림(Cream)'과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의 앨범까지 빌려주는 인물이다. 영화와 시와 록을 사랑하는 열일곱 살 남학생이라니. 허세가 넘치지만 미워할 수 없다. 좌충우돌 해프닝. 시종일관 유쾌한 톤으로 끌고 나가는 이야기. 가네시로 가즈키(<레벌루션 NO.3>을 위시한 ‘더 좀비즈’ 시리즈)나 오쿠다 히데오의 재미있는 산문집 <시골에서 로큰롤>의 정서와 상당히 유사하다. 즐겁다.


작가는 '지은이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정말 즐거운 소설이다. 이렇게 즐거운 소설은 다시는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생의 어떤 시기에 유독 열광하고 몰두했던 어떤 것을 공유할 수 있거나, 혹은 그 어떤 것에 수반되는 정서를 환기시키는 사람 혹은 대상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책도 마찬가지. 이 자전적 소설에 출몰하는 익숙한 이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기분이랄까. <식스티 나인>의 첫 문단은 이렇다.


1969년, 도쿄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 비틀스는 <화이트>, <옐로 서브마린>, <애비 로드>를 발표했고, 롤링 스톤스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으며, 머리칼을 마구 기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파리의 드골은 정권에서 물러났다.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심지어 16개 장의 제목 중 대부분이 음악과 시와 영화에 관련된 것이다. 랭보, 아이언 버터플라이, 레이디 제인,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 알랭 들롱, 웨스 몽고메리, 레드 제플린, 벨벳 언더그라운드, 이츠 어 뷰티풀 데이 등등. 소설 곳곳에서 록, 재즈, 팝아트, 독립예술영화, 언더그라운드 연극, 문학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책에 등장하는 뮤지션이나 음악은 작가의 플레이 리스트 같은 것일 텐데. 작가의 플레이 리스트 혹은 호출된 뮤지션을 따라 좋아했던 곡을 다시 찾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크림, 바닐라 퍼지, 비틀스, 롤링 스톤스, 아이언 버터플라이, 레드 제플린, 그레이트풀 데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웨스 몽고메리, 도어스, 존 콜트레인, 스탄 게츠, 보즈 스캑스, 스펜서 데이비스, 칼라 블레이......


즐겁게 살아야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 새삼스런 환기에 가깝다.


좋아하는 것을 순수하게 (그리고 열심히) 좋아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싸움이다. 나는 그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 무라카미 류


즐겁게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즐겁게 사는 것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에너지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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