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현의 시 '복사하는 월요일'과 '티셔츠'에 부쳐
하루 종일 복사를 했다
복사는 쉽고 간단했다
(...) 복사기는 규칙적이고 여분의 종이가 많아서 안심이 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복사를 할 수 있고
(...) 아무도 살지 않는 방에서 종이가 구겨진다
문을 열고 일그러진 종이를 꺼내면 다시 복사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 하나둘 사라진 아이들이 다시 반복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 어떤 방에서는 나프탈렌 냄새가 나고 어떤 방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나고 어떤 방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냄새는 장소마다 다르다
그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빈방에 종이를 채워 넣는다
그의 복사는 오래 진행되고
복사기를 통과한 종이는 따뜻하다
나는 그가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임수현, ‘복사하는 월요일’ 일부 (월간 <문학사상> 2020년 11월호)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웹진에 올라온 시 ‘초복’을 쓴 이도 임수현이다. 작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복사하는 월요일' 외 다섯 편으로 나의 시선을 잡아끈 이도 임수현이었는데.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명이인. 공통점이라곤, 둘 다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아동문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전자는 동시 작가, 후자는 어린이책 편집자.
지은이의 배경이나 세간의 화제와는 상관없이 나로 하여금 두 번 이상 읽게 하고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시를 만나는 것은 뜻밖의 즐거움이다.
임수현의 '복사하는 월요일'과 그밖의 다른 시들이 그랬다.
아무도 살지 않는 방에서 종이가 구겨진다
문을 열고 일그러진 종이를 꺼내면 다시 복사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고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空으로서의 세계를 떠올린다. 방 안의 종이는 이중적 의미로 읽힌다. 방이 카오스(혼돈과 무로서의 세계)라면, 종이는 비어 있는 존재의 형상일 수도. 방이 특정한 세계라면, 종이는 그 세계를 채우는 반복의 매개물일 수도. 나는 종이를 창조의 조건 혹은 관여로 읽는다.
그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빈방에 종이를 채워 넣는다
그의 복사는 오래 진행되고
복사기를 통과한 종이는 따뜻하다
나는 그가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누구인가. 신 혹은 세계(이렇게 편의적으로 부르는 것이 마뜩잖지만)라면 나는 종이일 텐데. 그렇다면 복사기는? 코스모스, 질서, 시스템, 혹은 추상기계, 이런 단어들을 대입시켜보다가 멈춘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이 시는 반복에 관한 것이다, 라는 정도일 것. 비어 있는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복사되고 반복되는 존재의 이야기. 그렇게 읽어내고 싶은 마음만 확인하기로 한다.
그 외 다섯 편의 시도 천천히 공들여 읽었다.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끌어와 자신의 시론을 펼치는 것 같은 느낌. 기성 시인의 작품이 아닌 소위 ‘당선작’을 이토록 열린 마음으로 읽은 적이 있던가. 감응할 대상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당선작을 당선작이게끔 만든 요인부터 살펴본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 이제야, 비로소, 나는 타인(마주치는 익명으로서의 타인)의 시를 읽을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서글퍼졌다. 나의 늦된 자각 때문에.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나의 늦된 열림 때문에.
‘두 개의 이야기’, ‘겨울 편지’, ‘고려 대상으로서의 빵’, ‘영역의 전개’ 등 다섯 편의 시가 다 좋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티셔츠’가 내겐 유독 가깝게 다가왔다.
문을 연다
티셔츠를 입는다
티셔츠 안에서 가질 수 없는 공간을 이해한다
티셔츠가 있던 자리가 비어 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티셔츠를 다시 두기로 했다
미선이와 나는 같은 티셔츠가 있다
자주 만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었다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티셔츠를 입고 벗고 반복하는 동안
어떤 사람은 티셔츠를 계속 만든다
수북이
쌓이는 건 곤란하다
나는 날마다 티셔츠를 입고 포기하지 않는다
영역이 넓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옷장을 열면 안 된다
그동안 너무 많은 티셔츠를 입었다
어느 날 나는 티셔츠를 버리게 될 것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 쌓인 티셔츠들
그곳은 누구의 방일까
미선이가 우산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티셔츠의 소매를 꼭 눌러 개킨다
이제 조금씩 사라져도 괜찮다
- 임수현, ‘티셔츠’ 전문
시인은 반복하는 사람, 반복을 생각하는 사람, 반복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 그리고 넓어지는 영역을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구나. 그래서 가깝게 느껴진 걸까.
화자가 티셔츠를 입고 벗고 반복하는 동안 어떤 이들은 티셔츠를 만든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가망 없(어 보이)는 티셔츠를 벗어나 티셔츠다운 티셔츠를 만들어내는 것. 수북이 쌓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화자는 날마다 티셔츠를 입고 포기하지 않는다.
미선이는 누굴까. 나와 닮은, 그러나 자주 만나지는 않는. 우리의 관계는 어떤 걸까. 서로의 안부가 중요하지 않은, 그러나 ‘미선이가 우산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모습에 신경을 쓰는, 그런 관계일 텐데. 나는 왜 알 것 같은가.
티셔츠를 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늘도 티셔츠를 입고, ‘어느 날 버리게 될’ 그 티셔츠를 꼭 눌러 개어서, 방에 쌓아 ‘두는’ 것. 만들지는 못하고 티셔츠를 ‘두기로 하’는 사람의 마음. 나는 왜 알 것 같은가.
그리하여, 이제는, ‘조금씩 사라져도 괜찮’은 티셔츠. 혹은 그 무엇.
조금씩 사라져도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이 있어, 오늘도 티셔츠를 입고 티셔츠를 두고 티셔츠를 눌러 개는지도 모른다.
기대하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202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