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의 시 - '재즈의 맛'
밤이면 허름한 재즈 까페들을 돌며 연주한 지 십육년째. 난 오늘도 콘트라베이스를 애인 대신 안는다. 피아노를 시작으로 트리오 연주를 시작한다. 오늘따라 드럼이 조금 절기는 하지만 최근에 저만한 드러머도 없다. 요즘은 찰리 헤이든의 곡을 자주 연주한다. 그냥 마음이 편해진다. 삼십명 정도의 관객 중 다섯명만 집중해서 듣고 있으며 여덟명은 만취되어 떠들고 있다. 가장 진부한 악기들로 가장 진보한 형태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음을 몇명이나 알고 있을까. 모르면 또 어떤가. 이제는 주목받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그저 연주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좋다. 휴식시간에 가끔 인사를 건네는 이십여년 만에 보는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우등생이던 네가 왜 여기서 딴따라를 하냐는 질문에 가장 할 말이 없다. 이해시킬 수도 필요도 없다. 허기진 음악을 하며 나는 한때 좌초되어 몇몇 인간들을 흘려버리기도 했다. 내 뇌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으며 새카맣게 타버린 뼈대만 남아 기계처럼 연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소리들을 연주한다.
이 재즈의 맛.
- 정재학, <모음들이 쏟아진다>, 창비(2014), '재즈의 맛' 전문
가장 진부한 악기들로 가장 진보한 형태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
악기 대신 언어를, 음악 대신 시를 대입해본다.
가장 진부한 언어로 가장 진보한 형태의 문학을 보여주는 것.
아는 이가 몇 명이든 연주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무언가의 맛을 본 이후 무언가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허기,와 좌초,와 수치심,과 기계처럼 살아가던 때,를 생각해본다.
최근 파울 첼란 전집을 읽고 있다.
고통과 상처를 언어로 형상화하는 것에 대한 생각들.
망각, 기억, 언어, 나와 너, 만남, 지향, 도정... 이런 단어들을 생각한다.
시는 대화이구나, 시는 음악이구나, 새삼 환기하며.
오랜만에 찰리 헤이든을 듣는다.
5-6년 전, 밤마다 듣던 곡들.
당시의 플레이리스트를 더듬어본다.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것처럼.
그 밤들이 되돌아오고 있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허기는 여전하다.
낮은 소리도 여전하다.
(202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