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판옵티콘’이 필요한가?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 To-Do-List


목록이 늘어간다.


‘to-do-list’로 망라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여기엔 온갖 잡다한 일상의 목록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세분화가 필요하다. 전체를 아우르는 ‘to do list(=오늘 할 일)’를 제외하고 메모장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to do list가 있다.


0. 오늘 할 일: 이것저것 되는 대로 뭉뚱그려진 to-do-list. ‘오늘 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표시되어 있다. 생필품 쇼핑 목록, 아이 관련 스케줄, 결제 목록 등 일상 관련 항목들.

1. To Read: 읽을 것. 책을 비롯한 활자 텍스트.

2. To Watch: 볼 것. 영화를 비롯한 영상 텍스트.

3. To Write: 쓸 것. 1과 2를 포함하여 쓰고 싶게 만드는 모든 대상이 포함된다. 관심과 흥미를 일으키는 지점에서 출발하기.


읽을 것이든, 볼 것이든, 쓸 것이든. 공통점은 차고도 넘친다는 것. 좋은 일일까, 좋은 일이겠지 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오늘 할 일'이라는 것. ‘오늘’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오늘 할 일’에는 말 그대로 ‘오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상의 목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카테고리 즉 to read와 to watch와 to write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읽고, 보고, 쓸 것들 중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목록들이 ‘오늘 할 일’에 일부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 안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가급적 오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혹은 적어도 오늘 시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계획.


아니다. 하루는 짧다. 이 많은 것들을 ‘오늘 할 일’에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은 야무진 꿈이거나 강박적 표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록이 늘어나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완료된 것을 지워나가는 속도는 느리고, 새롭게 추가되는 목록의 속도는 빠르기만 하다. 계획과 실천의 속도 차이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이라면 나 역시 버나드 쇼 식의 묘비명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얼마나 통렬하고도 유머러스한 마감 메시지인가.


# 오늘 할 일


읽고 보고 쓸 리스트는 차고 넘치지만, 가급적 ‘오늘’ 하고 싶은 것들로 리스트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이렇다. 정밀 타격하고 싶은 텍스트만 뽑아서. 예컨대 이런 식.


1. To Read: 바슐라르의 <물과 꿈> 5장과 노발리스의 <푸른 꽃> 9장 다시 읽기. 폴 굿맨의 <바보 어른으로 성장하기 Growing Up Absurd> 9장 & 10장 읽기. 사르트르의 <벽> 다시 읽기.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일부. 앨리스 먼로의 <떠남> 다시 읽기(마지막 세 편-단편 연작 중심으로), 문학 플랫폼 ‘던전’에서 눈여겨본 연재 시와 소설 읽기.


2. To Watch: 홍상수 감독 최근작 두 편. <인트로덕션>과 <도망친 여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윌비블러드>. 보고 싶지만 공포영화라서 보지 않게 될(주변 텍스트만 소비할 확률이 높은) 영화로는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랑종>과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퍼스널 쇼퍼>.


3. To Write: 자살에 대하여. 알모도바르 영화 <줄리에타>와 앨리스 먼로의 단편에 대하여. 아마추어리즘에 대하여.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에 대하여(이반 일리치 <학교 없는 사회>를 중심으로). 김유림의 두 시집에 대하여. 시 퇴고 혹은 다시 쓰기.


그러나 실상은 이렇다.


1. 오늘 읽은 것이라곤 밀린 영자 신문. 물론 일부 토픽이 흥미를 끌긴 했지만.


2. 정작 요즘 빠져 있는 것은 미드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지만. <나의 아저씨> 이후 웰메이드 드라마란 이런 것,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끔 하는 드라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한 편씩 보기 시작하던 것이 주말에 연달아 여러 편을 볼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시즌이 끝나면 전작 <브레이킹 배드>도 정주행하게 되지 않을까. 스핀오프나 프리퀄을 먼저 보는 재미도 분명 있을 것이다.


3. 오늘 쓴 것이라곤 지금 쓰고 있는 (계획에 없던) 글. 왜 이 글을 시작한 걸까. 교착 상태를 풀어보고자? 그러고 보면 내가 원하는 것은 특정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토로하는 일기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도 써야겠고, 시인론도 쓰고 싶고, 영화와 책에 대해서도 쓰고 싶은데. 늘어나는 목록 앞에서 점점 쓰고 싶지 않다는(혹은 쓰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 또한 늘어난다. 아이러니. 그렇다면 아이러니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모순된 두 가지 옵션이 아닐까. ‘자발적 판옵티콘’과 ‘그냥 웃지요’.


# 자발적 판옵티콘 –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방학이 되자 여름 캠프라는 명목하에 랜선 독서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고3 중심으로 철저하게 아이들을 관리한다는 소위 ‘관리형 독서실’의 온라인 버전. 카메라를 켜놓고 1교시부터 10교시까지 담임/매니저의 ‘관리(=감시)’를 받는다. 하루 계획을 꼼꼼하게 스케줄러에 기입하고 시작과 마감 시간을 정해진 폼에 적어 제출한다. 카메라 앞에서 딴짓(졸기, 오락, 유튜브나 SNS)을 할 수 없도록 자발적으로 감시받는 시스템.


온라인 수업과 관리형 독서실을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나는 혀를 찬다. 이제는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감시를 받는 것. 타인의 시선,이라는 이 강력한 힘을 비즈니스에 접목한 것이다.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으로서의 ‘판옵티콘(panopticon)’이, 푸코의 (권력과 감시체계 원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거쳐, 자발적 판옵티콘에 동참하는 자본주의적 모델로 탈바꿈하는 현상이라니! 이런 사회학적 시선을 더 파고들고 싶었던 건 아니고. 단지 순전한 이기심으로, 이러한 자발적 감시 시스템을 나의 글쓰기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 뿐이다. 감시와 강제가 필요한 것은 학생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 의지박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 아이러니 - 그냥 웃지요


영화 <비커밍 제인 Becoming Jane>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이 사랑하는 남자(제임스 맥어보이 분)의 삼촌을 처음 만나는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 판사인 삼촌의 ‘아이러니’에 대한 생각을 반박하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피력하는 장면이다. 아이러니를 단순히 ‘반어법’으로 번역한 것이 다소 거슬렸으므로 여기서는 아이러니로 쓰겠다.


판사: 아이러니란 미소를 띠며 모욕을 주는 것이지.

(이에 제인은 No라고 단호하게 답한다)

제인: 아이러니란 모순된 사실 두 개가 만나서 새로운 진실을 만들며 웃음이나 미소를 주는 거예요. Irony is the bringing together of contradictory truths to make out of the contradiction a new truth with a laugh or a smile.


문학에서 정의하는 아이러니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글들을 접하고 이러저러한 말들을 들어왔지만(혹은 들어와서인지도 모르고) 유독 이 대사가 꽂혀 적어두었다. 모순된 사실 혹은 양면성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진실 혹은 웃음. 어쩌면 서글픔. 나는 결국 ‘아이러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이러니를 느끼는 순간 그 자체를 계속 즐기고 싶었던 건가.


늘어나는 목록 특히 쓸(쓰고 싶은) 목록 앞에서 쓰고 싶은 생각이 점점 사라지는 아이러니. 생각해보면 매력적인 텍스트들은 대부분 이 ‘아이러니’를 다루거나 드러내고 있었다. 애쓸수록 엉뚱한 결과로 흐르는 것. 바라고 기대하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사태가 진행되는 것. 죽으려고 애쓸수록 죽지 못하고, 살려고 애쓸수록 삶과 멀어지는.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쫓아낼수록 가까워지는. 쓰고 싶을수록 쓰지 못하고, 쓰지 않으려 애쓸수록 쓰고 싶어지는.


맞다. 이럴 땐 ‘웃음’이 나온다. 영화 속 제인이 말한 것처럼 ‘미소’일 수도 있고 ‘자조’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겐 두 가지 옵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기 감시 혹은 그냥 웃지요. 이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시작했나. 알 수 없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려고 애쓸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되는, 이 아이러니.


(20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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