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 전. 전조 증상. 겁이 난다. 이번에도 또? 기압의 변화가 내 귀에 미치는 영향.
생각해보면 첫 해외 출장지가 도쿄였다. 2천년대 초반. 배우 S와 매니저, 기획사 임원, 포토그래퍼와 PR 에이전시 대표를 대동한 짧은 일정이었다. 기획사 임원의 까다로운(때로 무례한, 종잡을 수 없는, 늘 화가 나 있는) 태도에 진땀을 뺐던 기억. 새로운 업무에 관한 한 신참이었던 나는 여러 모로 허둥댔고 긴장 탓인지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
어느 호텔에서 묵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파크 하얏트였던 것 같다.) 예산 사정으로 배우와 한 방을 쓰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 기획사 쪽에서 화를 낼 만도 했다. 신참이든 고참이든 회사를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였으므로 현장에서 무조건 감당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전 처음으로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귀 통증을 경험하기도 했다. 평소 시달리던 편두통 증상보다 수십 배에 달하는 강도의 통증. 머리가 깨질 듯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드릴로 한쪽 귀를 뚫고 파고 들어가는 듯한 그런 고통.
착륙 전 비행기 내 기압 변화로 인해 귀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처음에는 기장의 착륙 기술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경착륙 혹은 연착륙이라는 말은 축자적 의미 그대로 내 몸에 적용되었다. 기장이 얼마나 부드럽게, 점진적으로 고도를 낮추면서 착륙하느냐에 따라 통증이 생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했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 컨디션 난조, 비염, 감기 기운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심할 경우 고막이 터져 귀에서 출혈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항공중이염’이라는 이름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것도.
20대부터 알레르기 비염과 만성 편두통에 시달렸던 내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컨디션 난항으로 비행 중 처음으로 귀 통증을 경험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때로부터 몇 년 뒤 캐나다에서 착륙 전 한 번 더 경험한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작년 벨기에행 비행기에서 십수 년 만에 극심한 귀 통증을 다시 경험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급습을 당한 꼴. 다른 승객들은 편안한 상태. 나 혼자 귀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상태. 승무원의 팁이나 이비인후과 의사들의 조언대로 이러저러한 사후 조치를 강구했으나. 일단 발생한 통증은 속수무책. 어찌어찌 20분 가까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브뤼셀 공항에 착륙했을 때. 말 그대로 ‘죽었다 살아났다’는 말이 떠올랐다. 착륙 후엔 거짓말처럼 말짱해지니까.
우습게도. 이런 말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인간은 땅 위에 발 붙이고 살아갈 운명. 나는 유난히 기압 차이에 취약한 인간. 내 몸을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여전히 나는 내 몸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 몸 바깥의 일도, 내 몸 안쪽에서 벌어지는 일도.
그러니 겸허해야 한다. 경청해야 한다. 내 몸 아닌 것(세계에서 내 몸을 빼면 내 몸 아닌 전체가 남는다) 그리고 내 몸(으로 간주되는 것)에서 보내는 메시지까지.
공교롭게도. 최초로 귀 통증을 경험했던 도쿄발 비행기를 상기시키는 공간이 다시 도쿄발 비행기라는 것. 당시엔 경착륙.
다행히도. 이번엔 연착륙. 미리 예방하기(비행 전날 충분한 수면 취하기, 무리하지 않기), 징조가 나타나기 전의 조치(착륙 전 비염 스프레이 뿌리기, 하품하기, 잠들지 않기, 무언가를 씹기) 등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이런 것들은 인식의 문제에 속한다.
인식이 현상을 조절하기도 한다.
(202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