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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08. 2020

무미(無味)의 맛

아무 맛도 나지 않아 맛있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아 맛있는 파피 씨드 빵. 무미의 맛.


마카오의 어느 호텔. 파피 시드 빵(Poppy Seeds Roll, 양귀비 씨앗으로 만든 빵) 하나를 집었다. 


“맛있네, 아무 맛도 없어서.” 내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무 맛도 없는데 어떻게 맛있을 수 있지?" 옆에 있던 K가 빙글거리며 말한다. 

"그러게." 나는 중얼거렸다. 


일종의 역설인가. 무미(無味)의 맛. 아무 맛도 없다고는 할 수 없고 별다른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특별할 것 없는 ‘별맛 없음’이 오히려 특별한 맛으로 다가온달까.


생각해보니 나는 이렇듯 심심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한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하드롤이며, 별맛 없이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모닝 빵, 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밋밋한 빵, 포실포실한 결이 살아 있는 우유 식빵, 거친 듯 눅진한 누룽지, 증편, 구운 가래떡, 그리고 갓 지은 맨밥까지.


달고 짜고 쓰고 맵고 신 다섯 가지 주요 맛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지고, 고유의 풍미와 질감만이 도드라지게 남아 있는 그런 맛. 그것도 맛의 종류라면 (역설적이지만) 무미(無味)도 맛이다.


무미의 삶(처럼 보이는 삶)도 다 저만의 맛, 고유의 결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개별적이고 오묘한 맛을 어찌 보편적인 오미(五味)의 범주로만 나눌 수 있을까. 아마도 무미(無味) 안에서조차 셀 수 없이 많은 맛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정의와 분류의 언어를 넌지시 거부하며.

오로지 단 하나의 혀만이 감지할 수 있는 그런 맛들이 무수히 모여 겨우 오미(五味) 중 하나를 가리켜 보일 따름이겠지. 

개별성이란 그런 것이리라. 보편성 또한 그런 것이리라. 
삶의 개별성도, 삶의 보편성도.


(2016-5-21) 



https://youtu.be/K649N7Mx6Q8

The Taste of Life by Red Foley


The Taste of Life


Oh, the taste of life it gets bitter

But you can't give up, you can't be a quitter
You're wantin' no more, you gotta take another bite
Hmm, the taste of life.

I know a man didn't know what to do
I guess he bit off more than he can chew
He just sits around and looks all beat
You gotta take the bitter along with the sweet.

Oh, the taste of life it gets bitter
But you can't give up, you can't be a quitter
You're wantin' no more, you gotta take another bite
Hmm, the taste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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