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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08. 2020

본 투 비 와일드, 본 투 비 블루

와일드와 블루는 상통한다 (feat. 추억의 하이텔 하드록 동호회)

하드록 동호회에 들락거리던 시절. 대부분 남자 대학생들이었다. 막내 여고생도 한 명 있긴 했다. 여자라곤 (나 포함) 통틀어 서너 명. 우리는 가끔씩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모임'이라는 세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어쩌면 대학 동아리를 제외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해본 모임인지도 모른다.


하이텔 시절의 일이다. '정모'의 일부분은 록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춤 추는 록카페가 아니다. 록 음악 감상실 정도)를 별도로 빌려 록 음악 및 뮤직비디오 감상회를 갖는 시간으로 할애되기도 했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여 일종의 앤솔로지 앨범(이라고 해 봤자 빈 CD에 녹음을 하고 조악한 프린트로 재킷을 만들어 입힌 것에 불과했지만)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으니 꽤 열심히 꼼지락거린 셈이다.


어느 날이던가, 누군가의 선창(과연 어떤 맥락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는지는 기억 나지 않지만)으로 Born To Be Wild가 제창되기도 했다. 아마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 곡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따라 불렀으리라. 


스테판 울프(Steppenwolf)의 원곡(1968)보다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커버 버전으로 더 익숙한 그들이었지만, 데니스 호퍼(Dennis Hopper)와 피터 폰다(Peter Fonda)의 로드 무비 <이지 라이더Easy Rider>(1969)에 녹아 든 오리지날 사운드트랙에도 열광했던 기억.


유난히 공대생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요즘 말하는) 덕후들이었는데, 데이트할 비용이 아까워(그 돈으로 CD를 사야 하기 때문에) 여자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는 친구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베이스 기타를 치는 친구였는데, 늘 한쪽 눈을 가리는 긴 머리에, 가죽 재킷 차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이 없고, 가끔씩 베이스 기타를 메고 오기도 했던 그 아이(기억 나는 이름 J)는 내게 (자신의 영웅인)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라는 베이시스트를 알려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얼굴이 하얗고 앳되어 보이는 B, 모르는 것이 없고 한번 입을 열면 끝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던 H, 어딘가 냉소적이지만 이미 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기도 했던 E,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직장인이었던 M언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었던 또 다른 남학생 등등.  


아, 그들은 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견 ‘와일드’와는 대부분 거리가 멀었던 그들. 그러나 Born To Be Wild에 열광하며 따라 부르던 그 'to-be-wild' 키드들도 이제 40줄에 들어섰겠지.


이제는 Born To Be Wild보다 Born To Be Blue에 더 반응하는 내가, 문득 와일드한 영화를 보고 와일드한 음악을 듣던 예전 모습을 상기하는 것은,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to-be-wild' 카드를 내장하고 있다는 방증일까.


쳇 베이커(Chet Baker)의 생을 그린 Born To Be Blue가 개봉한다고 한다. 주연은 에단 호크(Ethan Hawke)라 하니 이거 참 기대된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보다 그의 몽롱한 보컬에 더 끌린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의 트럼펫 연주도, 그의 오묘한 보컬도, 그의 와일드한 삶 자체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덜 매력적이다.


‘와일드’와 ‘블루’는 상통한다.


(2016-6-1) 


https://youtu.be/rMbATaj7Il8

Steppenwolf의 Born To Be Wild (영화 <이지 라이더>)


https://youtu.be/3y11EHQAGhU

Chet Baker의 목소리로 듣는 Born to Be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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