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다는 아니어도 대체로
“살아보니 보이는 게 거의 다더라구요.”
바깥은 섭씨 36도. 동네 단골 인도 식당.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독 도드라지게 들렸던 말이다.
아무리 숨기고 포장하려 해도 다 드러난다는 말일까. 외모, 표정, 말투, 옷차림, 행동, 습관 등.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됨됨이를 대략 짐작하게 하는 요소들의 대부분은 '보이는' 것이 맞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취향'과 '가치관' 혹은 사람과 세계에 대한 ‘태도’ 또한 대화나 행동 혹은 글을 통해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물론 가식과 위선을 완전히 발라내기는 어렵겠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과 통찰을 가진 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과 경험이 주는 연륜의 깊이로 '보는 눈'이 밝고 예리해진 사람이라면, ‘보이는 것’에 대한 세심한 ‘관찰’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어쩌면 거의 대부분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살아보니 보이는 게 거의 다더라’라는 말에 전적으로 수긍하지는 못하면서도 나름 합당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보편적 사실 또는 경험을 말할 때 늘 그렇듯, 다는 아니어도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니까.
“통계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말씀인가요?”라는 나의 질문에,
“통계적으로 봐도 그렇네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네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어했던 이유 또한 그 사람의 ‘보이는 것’에 대한 나의 사전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인사와 여러 차례의 마주침, 가벼운 모임 자리를 통해 습득한 ‘보이는’ 정보가 바탕을 이루지 않았던가. 그네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인사, 건네는 말,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반응하는 태도, 말투, 화법, 표정, 눈빛, 시선 처리, 읽고 있던 책, 마시는 차, 선택한 메뉴나 디저트, 옷의 디자인과 색깔, 머리 모양, 느릿하거나 잰 몸동작, 말의 속도, 손동작, 등등.
이렇듯 가장 표면적인 요소만으로 상대를 가늠하는 실마리를 찾았다면, 말(혹은 글)을 운용하는 방식을 파악함으로써 조금 더 이면의 모습을 보게 될 터이다. 타인의 이면을 살짝 엿보았다 해서 그이의 심층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쩌면 ‘표면’과 ‘얕은 이면’까지도 ‘표층’으로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단순히 ‘보인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내 배로 낳은 자식의 속내도 결코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 (표면과 얕은 이면까지 아우르는) 표층을 ‘본다’는 것은 타인의 꽤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 자신의 심층도 알지 못하는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심층을 파고든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참으로 탁월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차곡차곡 쌓인 세월의 더께를 자양분 삼아 끊임없이 타인을 바라보고 온당하게 이해하려 애쓰는 것이 아닐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보이는 게 다는 아니어도 거의 다더라,라는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201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