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를 위하여
나에게는 사랑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써놓고 보니 어째 좀 어색하다. 나는 원래 ‘사랑한다’라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사랑이라는 말은 왠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사랑이 만발하고 또 남발하는 세상에서 적어도 나 하나쯤은 습관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아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단어가 주는 의미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무조건적인 부모의 사랑, 정도 외에는. 세월이 많이 흘러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제법 자주 한다.
그 '사랑하는' 친구는 25년 지기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내가 그녀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일이다. '제대로'라는 말은 그녀의 내면 혹은 속내를 읽게 된 것을 뜻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때가 되면 습관적으로 친한 친구들끼리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란 이런 식이리라. 물론 마음 맞는 이들끼리 좀 더 내밀한 이야기나 비밀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 한가운데를 열어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하다 못해 마음 한 켠 허물어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러니까 나는 25년 지기 친구에 대해 잘 몰랐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 세상에 결코 단언할 일은 없으니.
그 친구와 그동안 몰랐던 속내 혹은 미세한 감정들을 나누게 된 것은 구두로서의 '말'이 아니라 문자로서의 '글'이었다. 생각다 못해 (무수한 익명의 얼굴들이 바글바글한) 세상을 향해 창을 하나 낸답시고 열어 놓은 것이 블로그였다. 열대의 나라로 이사 가게 된 바로 그 해부터 지금까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의 너절한 넋두리나 생각의 편린들을 읽어준 유일한 독자가 바로 그녀였다. 나의 글자들을 보듬어주고 좋아해 주던 친구가 있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으니 말이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처럼, 우리는 사춘기 소녀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짧은 글 주고받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판화를 전공하는 순수 예술가이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작업을 하는 과정 자체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동양화를 전공하던 학부 시절부터 ‘정신을 모아 붓 한번 움직이고 나면 진이 쑥 빠진다’던 사람, 왜 그렇게 미련하게 자신을 혹사해가며 작업을 하느냐,는 주위의 참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물론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다.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참 힘겨운 동판화 작업 이야기, 색에 대한 그녀의 느낌들, 좋아하는 예술가에 대한 생각, 그 외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때로는 현재와 이어진 과거의 힘든 기억들…… 특별할 것도 없는 그러나 특별한 이야기들이었다. 내 안의 이야기들을 더 알고 싶다며, 그것들을 차곡차곡 자신의 파일에 넣어 나만의 특별한 ‘나이테’ 작품으로 형상화하여 선물해주고 싶다던 (듣기만 해도) 설레고 반짝이는생각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동굴로 들어갔다. 여기서 동굴이란 '자기 침잠'을 의미한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삶이 너무 힘겹다고 느낄 때마다 그녀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웅크리듯 몸져누웠다.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라고, 바깥 햇빛과 바람이 이리 좋으니 어서 나와 몸을 쬐고 숨을 들이쉬어 보라고 이야기해보았자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웅크릴 대로 웅크리고 있다가 나오고 싶을 때 나오렴”이라는 말밖에 없다. 나는 동굴 바깥에서 (지지고 볶으며)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누구나, 표현하기 어렵고, 표현한들 타인이 이해하기 힘든 시간들을 지니고 있음을 나는 안다(고 믿는다). 그것은 과거의 일일 수도 있고 현재의 일일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에 상관 없이 삶 자체에 들러붙어 있는 떼기 힘든 질문이나 그림자일 수도 있다.
시를 읽은 후 설명하기 힘든 울림을 느낀다 해도, 그 시를 쓴 당사자의 시심(詩心)을 낱낱이 헤아릴 길은 없는 것처럼(아니 그럴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타인의 고통에 나의 마음이 불편하게 흔들려도 그 고통의 낱낱을 들추어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그녀의 작업실을 찾기 위해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던 날, 마주한 그녀 앞에서 (나의 이야기로) 눈물을 흘렸을 때, 마찬가지로 그녀는 나의 속내를 일일이 알 길이 없었을 것이다. 끌어당겨 짐작하는 것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으랴.
그러나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은 될 수 없어도, 나의 고통이 적어도 타인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는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타인의 고통 그 자체가 아닌 그 주변을 둘러싼 외적 표현의 결과물 혹은 흔적들을 들여다보는 것뿐이리라.
그녀가 내게 석사 논문집을 건넨 지 5년 만에 그녀의 논문을 꺼내어 들여다본다. 동굴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 흔적을 좇게 된 셈이다. 논문 사이에 끼워진 청구전 팸플릿 위로 선명하게 “삶은 끊임없는 멜로디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니체의 말이다. 논문 첫 부분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온 말로 시작한다.
“더없이 적은 것, 더없이 조용한 것, 더없이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숨결 하나, 휙 하는 소리, 한순간. 이처럼 적은 것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조용히 하라!”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4부 ‘정오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교집합을 이루는 것이 많은 친구였어도 이렇게까지 세밀한 구석은 알 수가 없다. 참고 문헌에 올라 있는 니체의 책들과 철학자 고병권, 이정우의 책들도 눈에 띈다. 니체나 메를로 퐁티의 몸 철학이 등장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의 주제는 ‘손’이기 때문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어렸을 적 자신의 ‘발’에 대한 철학적 체험을 시작으로 몸 철학을 전개한 것처럼 그녀는 ‘손’에 천착하였다. 세계 속에 있으면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생성의 존재로서 ‘손’을 바라보았던 그녀가 지금 잠시 손을 거두어 멈추어 있다. 나아가기 위한 멈춤일 것이다. 멈춤의 시간도 나이테로 드러날 것이다.
이진경의 책 <노마디즘>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심지어 만난 적도 없지만, 서로 간에 호의를 갖고 무언가를 주고받았고, 그것을 통해 삶이나 사유에 어떤 변화가 야기되었다면, 그것으로 우정을 나누었다고 말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요즘 나는 디지털 공간을 통해 익명의 사람들과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다. 그들의 글과 생각의 흔적들에 자극을 받고 내 안의 실천 의지를 일깨우게 하는 그 무엇. 위의 말대로라면 나는 익명의 타자들과 소박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나는 익명의 우정(이랄 만한 것) 속에서 내 오랜 우정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친구라는 말 앞에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우정보다 강한 그리움의 표현이 사랑일 테니 말이다.
익명의 (얼굴들로 가득한) 바다에 띄울 유리병 편지를 생각하다가, 정작 지금 내가 띄워야 할 편지는 동굴 속 친구를 위한 것이어야 함을 불현듯 깨닫는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는 우정의 기록을 나누고 싶은 마음 외에는. 거창할 것 없는 그 마음만을 (편지를 대신하여) 이 글에 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잠시 멈춘 그녀의 손이 (머지않아) 그녀와 나를 그리고 다른 타인들까지 잡아당겨 주기를 바라면서. 그녀가 선 하나하나를 힘겹게 그어나가며 완성한 동판화 중 하나에 “나는 삶을 당긴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처럼.
끌려가지 않고 당기는 것. 우리는 늘 함께 당길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함께 삶을 당긴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이리라.
2015-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