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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un 24. 2020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내 인생의 밑줄 -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라는 이름은 늘 어떤 울림을 준다. 고등학교 때 읽은 선생의 처녀작 <나목>을 시작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한 선생의 이력조차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희망의 등불처럼 깜박거려왔으니 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웅숭깊어지는 선생의 문장들 앞에서 나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깊게 우러나오는 차 맛처럼 천천히 밑줄 그어가며 음미하기도 했다.


노년에 이른 선생의 글은 (역시 나이 먹으며 철 들어가는) 나에게도 조금씩 스며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소설보다는 산문을 통해 전해오는 (노작가의 거리낄 것 없는) 진솔함이 더 좋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 해인) 2010년 여름에 나온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산문집은 책 제목에서부터 나를 끌어 당기더니, 두 페이지 가량의 짧은 책머리에서는 나를 아예 무장해제시켰다. 10년 전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5p)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의 소제목이 마침 [내 생애의 밑줄]이다.


“독자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 상태에 와 닿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 그 문장을 만난 것이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심오한 뜻을 담아낸 명문어사여서가 아니라 검부락지라도 잡고 싶은 내 절박한 심정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

“그 밑줄 친 문장이 당장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 나는 (…) 평범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소리 없이 나를 스쳐 간 건 시간이었다. (…) 나를 스쳐 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도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나를 솎아 낼 때까지는 이승에서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좋은 글도 쓰고 싶으니 계속해서 정신의 탄력만은 유지하고 싶다.”

(‘내 생애의 밑줄’ 중에서)


그렇게 정신의 탄력을 위해 글쓰기를 멈추지 않던 선생에게도 어느 순간 막힐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작가는 시를 읽는다고 했다. 2부 [책들의 오솔길]에 나오는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라는 제목의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 글을 쓰다가 막힐 때 머리도 쉴 겸 해서 시를 읽는다. 좋은 시를 만나면 막힌 말꼬가 거짓말처럼 풀릴 때가 있다. 다 된 문장이 꼭 들어가야 할 한마디 말을 못 찾아 어색하거나 비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도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를 꿔오기 위해, 또는 슬쩍 베끼기 위해. 시집은 이렇듯 나에게 좋은 말의 보고다.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 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 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 시는 낡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다고 한물가는 시는 시가 아닐 것이다.”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을 때’ 215p)


몇 년 전부터 생겨난 일이다. 가슴이 몹시 뜨거워지거나 시릴 때 시를 썼다. 뭐라도 쏟아내고 싶어 적다 보면 ‘시’라는 형태에 가장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안에서 치밀어오르지만 언어로 옮길 수 없을 때 아무 시집이나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본다. 눈에 띄는 제목이나 시선을 사로잡는 단어를 중심으로 읽어 내려간다. 선생이 말한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서 서성이다 검부락지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그 절박한 심정과 맞아떨어지는 단어 또는 문장을 찾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읽고, 밑줄 그으며, 글을 쓰는 것. 이 책의 첫머리에서 선생이 밝혔던 것처럼,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언가를 읽거나 밑줄 긋거나 쓰는지 모른다.


(201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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