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으로만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쓸 말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어디서 글감을 찾아야 할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자. 주어를 '나'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본다.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시선을 바꿔보자.
나의 생각이 100% 나만의 생각일까? 한 달 전에 읽었던 책, 어제 봤던 인터넷 기사, 가족이나 친구가 했던 말들도 섞여있을 것이다. 은유 작가는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신영복 작가는 책 <담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서 놓여 있는 것이며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정체성이란 내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맺고 있는 수많은 관계의 조직입니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영위되는 인격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관계의 총합이다. 인생의 기쁨과 슬픔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삶이란 관계 속에서 남긴 흔적의 모음집이다.
책 <전태일 평전>은 자신도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지만 동료 여공들, 가난한 친구들, 고생하시는 어머니 등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쓴 글이다. 그의 외침은 노동 현장의 참상을 드러내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삶, 불의에 저항하는 삶,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다.
능력, 직업, 외모, 학력, 재력 등으로 서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현실이 슬프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라고 따로 선을 긋는 것 자체부터가 오만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부질없고 덧없는 껍질을 벗겨내면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인데. 상대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언젠가 나에게 일어날 일을 단지 상대가 먼저 겪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귀 기울여 보자.
타인의 이야기를 글감으로 캐치하여 메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송숙희 저자의 ’ 3찰 포맷‘을 활용해보자.
3찰 포맷이란 관찰(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성찰(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통찰(이런 것을 발견하고 배웠다.) 이 3가지를 실천하고 기록해두는 것을 의미한다. 글감이란 순간의 포착이다. 평소에 틈틈이, 꾸준히, 조금씩 글감을 비축해 두어야 한다.
글감이 떨어졌다면 다른 사람을 잘 관찰해보자. 다른 사람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보자. 인간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는 노력도 글쓰기에서 중요한 재능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최고의 글감이 된다.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계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_책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