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도덕경 속에는 주옥같은 말들이 참 많이 있다. 노자는 예수보다 이른 시대의 사람이다. 약 2500년 전, 실존했던 인물로 추정 중이다.
그의 아름다운 말들을 읽고 듣다 보면 어느새 빠져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반면 누군가는 언뜻언뜻 찾아오는 공허함으로 허탈할 수 있다.
평범함 속에서 숨은 진주를 찾을 줄 알아야 하고, 이미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성인의 덕이 크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스스로 잘 따라와서 감화(感化)된다는 노자(老子)의 사상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의 주체나 상황이 어떠하든 인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 스스로가 영롱한 진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그리고 기득권 계층이 아닌 이상 다 갖추어져 있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다. 없는 가운데에서도 만족하는 삶을 살라며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내 안의 숨은 진주는 결코 밖에서 찾을 수 없고 인고의 노력 끝에 스스로 진주가 되어가는 삶.
또 세상은 '나'의 깨달음 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도교도 물론 선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 간 상위 하위 입장에서 서로 존중하는 것이나 기독교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사랑하는 개념이다.
선과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
사랑이 없어도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진심이 아닌 가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노자는 자신의 말이 쉽고 따르기 좋으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알기를 원했으나 정작 그는 그저 자리를 지킬 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심이 없었다. 그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제자를 내치고 자신의 갈길만 가신 분이다. 공자가 제자라는 설이 있는데 실은 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찾고자 친히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섬김으로 본을 보이셨고 자신을 스승이 아닌 좋은 친구라 칭하셨다.
마태복음 22:39 KRV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