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오박사님 말을 끊을 사람이 이 세상이 몇이나 될까.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그의 공격성은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상대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불쾌함을 기울어진 미소에 빠르고 정확한 딕션으로 쏘아붙이는 능력은 탁월했다. 물론 그의 비아냥대며 비꼬는 말투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드는 따져묻기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쏟아내는 스킬은 그의 아내 위에 궤양 스무개가 생긴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의 기세, 그것도 전국민이 인정하는 전문가 중에 전문가 탑티어 오박사님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그의 기개가 부러운 건 나뿐일까. 오박사님 뿐만 아니라카메라도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이게 도대체 뭐냐, 아내가 이야기할 때는 고개 끄덕이며 위로하시고 내 이야기에는 다르게 반응하시지 않느냐, 나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느냐며 그 순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터뜨리는 것이 내가 듣기에는 시원했는데, 부럽다고 말하는 나도 욕을 먹으려나. 클립 영상에는 이혼 하라고 난리가 났지만 용기내어 물음표를 던져 본다. 강원래가 그렇게 잘못했나?
나 회유형은 사실 비난형이 부럽다. 진심으로 부럽다. 누군가와 소통할 때 회유형은 자기 자신을 뒤로 미뤄둔다.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 감정 보다는 '상황'과 '타인'을 우선시 한다. 자기 주장을 하기 보다 타인의 사랑과 인정, 타인에게 수용되기를 택한 것인데 그래서 동의와 동조, 양보와 Yes가 익숙하다. 자신을 낮추며 상대를 만족시키려 애쓰고, 갈등에 맞서기 보다는 피하거나 상대 욕구에 맞춰주는 것이 맘편한 것이 회피형이다. 일명 착한애, 회유형은 보통 그렇게 불리곤 한다.
의사소통에 대한 수업은 중학교에 발령받은 2018년 처음 시작했다. 그해 '절대 웃으면 안되다'던 중학교였음에도 이상하게 우리반 아이들이 참 착했다. 호의적이며 협조적이었고 쉽게 말해 아주 순했다. 중학교 3학년이라 저희들 나름대로 철이 들어서 그럴까 싶었는데 의사소통 유형 검사를 하고나서 비로소 알았다. 서른명 남짓 되는 아이들 중에 회유형이 무려 스무명.
아, 그래서 그렇게 잘 굴러갔구나. 그래서 그렇게 담임 교사인 내가 뭘 하자고 하든 동의하고 따라주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뾰족하기가 바늘보다 더한 고슴도치 같은 친구도 그러려니 하며 이해해줬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라기 보다는 갈등을 회피한 것이었겠지만) 회유형의 말 못할 속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회유형으로 구성된 우리반은 참 좋았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3학년 중에 제일 좋은 반이 우리반이었다.
그리고 그 뾰족이, 그 친구가 바로 비난형이었다.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타인도 상황도 뭣도 다 필요없고 자기 자신만 고려하는 유형으로 회유형과 딱 반대되는 유형이다. 비난, 무시, 비꼬는 말을 서슴지 않고, 강하게 보이는 행동이나 화난 듯한 행동을 일삼는다. 요구도 많고 그래서 불평, 불만도 많다. 작은 일에 쉽게, 불같이 화를 내고 쉽게 진정되지도 않고 말이다. 제 심사가 꼬이면 상대를 최대한 자극하거나 가능한 상처주는 방식으로 그 기분을 표현하곤 했다. 툭하면 시비거는 애, 말 못되게 하는애, 그게 바로 비난형이다.
사티어라는 학자가 분류한 의사소통 유형을 가지고 진행하는 수업은 할 때마다 흥미진진했다. 체크리스트로 자신의 유형을 찾을 때는 A, B, C, D, E 알파벳으로만 구분을 해두고, 이후에 각 알파벳에 해당하는 유형의 명칭을 발표하면 웃음이 터져 나오곤 했다. 특히 유형별 특징과 각 유형마다 그러한 소통방식을 사용하는 내적 원인에 대한 썰을 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나를 갓 신내림 받은 무당 보듯했다. 가장 대표적인 소통 유형 검사인 만큼 각 유형과 그 특징이 잘 들어맞기 때문일텐데 사티어님이 받아야 할 경외의 눈빛은 내자치였다.
"자, B가 가장 많이 나온 친구들. B는 비난형 이에요."
다섯 가지 유형 중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단연코 비난형이다. 대게 한 학급에서 5-10%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이에 해당 되었는데 '비난형'이라는 그 이름만으로 아이들은 폭소하곤 한다. 특히 비난형에 해당되는 친구들은 영어 문장을 직독직해하듯직관적적으로 이 유형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그들의 근본적 이유였는데 그 부분을 설명할 때 아이들의 호응이 꽤나 뜨겁다. 비난형의 행동목표는 '약해서는 안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라고 소개하면 아이들이 "진짜 그래?"하며 끄억 끄억 웃었고, 비난형 아이들은 도대체 왜 웃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한거 아니야?"라고 받아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상대를 향한 공격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이 비난형 친구들의 속 마음은 사실 (3초 쉬고) '외로움'이야."
3초의 정적. 그 순간 모든 아이들이 칠판으로 빨려들어가듯 집중하면 도파민 퐈. 그리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웃고 있던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위로의 메아리, 음계로 치면 '레-미' 정도의 음차를 두어 긴 소리의 메아리를 만들고 비난형 아이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하게 바뀐다. 비밀을 들켜버린듯한 당황스러운 미소에 슬픔이 섞인 표정을 짓기도 하고 아무 표정없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얘들아, 비난형 친구들 많이 격려해줘. 회유형은 인정받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동의하고 동조하지만, 비난형은 이미 '난 인정받지 못했어'라고 생각한대. 그래도 회유형은 친구들과 원만히 잘 지내지만 비난형 친구들은 그러지 못한 경우도 꽤 되거든. 이 친구들이 비난하는 그 순간, 사실 그 친구들의 마음은 '도와줘'라고 말하는 거래."
'레-미'의 메아리가 다시 울려 퍼진다. 처음 보다 더 길게.
"이제 친구가 흥분하거나 거친 말을 하면 '아, 친구가 지금 위로해 달라고 하는거구나. 도와달라고 하는거구나.' 이렇게 생각해 주기로 하자."
그럼 또 여기 저기에서 아이들이 비난형 친구들의 이름을 넣으며,
"재성아 괜찮아."
"단주야 괜찮아."
하고 괜찮아 캠페인이 시작된다. 다행인 것은 비난형에 해당되는 친구들이 쑥스러워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한다는 것. 친구들이 장난 스럽게 던지는 그 말에도 아이들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 조차도 아이들에게 위로로 전해졌던 걸까 짠한 마음도 든다.
그 누구보다 큰 토닥임이필요한 비난형. 독이 바짝 올라있는 그 미운 말들은 도대체어디에서 왔을까.
(사진출처 : 픽사베이)
*의사소통 유형검사지가 포함된 블로그 링크 입니다. 저와 아무 관련없는 분의 블로그예요. 찾아본 중에 검사지가 가장 보기 좋게 만들어져 있어 가져왔으니 한 번 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