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랭크 2분 40초. 심적으로 상당히 우쭐한 상태이다. 포트를 50도에 맞추고 유산균 한 포 때려 넣었는데 느낌이 조금 이상하다. 엉덩이가 심상치 않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홈드레스를 걷어 올리고, 속옷도 내려 엉덩이 상태를 확인한다.
이런. 엉덩이도 우쭐하다.
엉덩이가 봉긋 솟아있다. 출산이후 흘러내린 내 엉덩이. 맨몸을 드러내고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어떡하지 소리가 절로 나오던 그 엉덩이.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 어떡하지. 한탄과 개탄 이런 것 외에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상체를 숙여(왜 숙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머리통이 허리 아래까지 내려갔을 때 난 가랑이 사이로 까꿍 고개를 내민 내 엉덩이를 봤다. 고개를 다리 사이로 꺾어 넣어 '본 것'이 아니다. 시야를 낮추니 '보이는'거다. 뒤에 달린 것이 정면에서 보이는 순간 내가 얼마나 놀랐게. 저게 여기서 왜 보여. 정말이지 시냇물처럼 엉덩이가 줄줄줄 흘렀다.
나의 엉덩이는 더이상 둔부가 아니었다. 둔부란 볼기의 윗부분을 말하는데 윗부분이 있어야 말이지. 격자로 줄을 그으면 오목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커다란 살덩이가 붙어있는 정도, 그게 내 상태였다. 굴곡 없이 평야처럼 늘어진 살덩이는 옷태에도 영향을 미쳤다. 허리가 끝나지 않는 느낌. 가도가도 허리인 상태. 상하체 적정 비율에 둔부의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옷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무엇이든,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만고의 진리였다.
자신의 몸을 보고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드는 느낌은 어떤거냐고 묻는 남편, 얘는 또 어떡하지. 남자에게 공은 수족의 일부라더니 축구공이 그의 한 쪽 발이었다. 축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축구를 잘 하기 위해서 몸을 관리하는 남자인지라, 뭐랄까. 남편의 엉덩이는 정말 탐스럽다. 집에서 드로우즈 한장 입고 다니는 그의 몸은 참 보기 좋다. 그 몸으로 살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그러라고 만든 근육이 아닐텐데 그의 건강함과 체력 없는 우리 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제 몸을 세상 소중히 여기는 남자라 나의 상태가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엉덩이가 우쭐해지다니. 물론 플랭크가 가져다준 일시적 효과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상태로 돌아가겠지만 희망을 보았다. 내 엉덩이도 올라갈 수 있다. 둔부를 되찾을 수 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방에서 자기계발 중인 남편에게 쫓아가 엉덩이를 깠다.
"자기야 내 엉덩이 좀 봐봐."
"오."
동그랗게 오므려진 남편의 입술이 귀엽다. 어떻게 된 일이냐는 질문을 듣고 나의 엉덩이는 일종의 '사건'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볼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보정 속옷은 아니지만 속옷 본래의 형태로 인해 힙이 받쳐 올라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노출하고 싶었지만 그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고 있다. 손은 키보드 위에 얹어져 있고 고개만 돌려 나를 보는 그 상태에서 속옷 마저 내리기가 적절치 않다는 순각적인 판단력으로 욕구를 누르고 돌아 나오며 생각했다. 남편에게 엉덩이 까기가 참 쉽다고. 엉덩이를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제 내엄마, 친정엄마에게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볼기 보여주기. 그런데 남편에게는 아무렇지가 않다.
배우자란 무엇인가.
잠깐, 엉덩이 다시 확인하고. 그래 배우자란 무엇인가. 내 남편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남편과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는 충동이 인다. 엉덩이를 까고 글을 쓰고 싶을 줄이야.
토요일 아침, 기분이 좋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