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사쁨 May 13. 2024

어버이날인데 뭐 안 하니?

말 나오기 전에 미리미리 날짜 딱딱 맞춰 갖다 바치면 될 일이지만 딸년은 정신머리 없는 워킹맘이다. 어플로 간단히 해결되는 시댁과 달리 우리 집은 출금을 해서 봉투에 넣어야 하는 시스템. 번거롭다. 그성가시다.


친정 아빠의 식사 호출. 이것은 어린이날 모임인가 어버이날 기념인가. 의문이긴 하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빠가 긁으면 어린이날, 언니가 계산하면 엄마 아빠의 날이겠지. 식이자 부모이지만 오늘 이 리에선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한다.




단 갈비를 잘 굽고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무려 소. 가장 잘 구워진 것, 그중 찢김이 부드러운 것만 골라 내 새끼 입에 넣어준다. 이 괴기 한 점을 먹이기 위해 해야 하는 말 퍽이나 많고, 그것을 어쩐 일로 넙죽 넙죽 먹어주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입술과 손가락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데, 아빠는 계속 너 먹어, 너 먹어 한다. 딸 먹일라고 부른거라고.


아빠는 엄마에게 당신 카드 어쩌고 하더니 아들 손주 챙겨 먼저 나가신다.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그대로 귀가. 엄마는 언니네 차를 타겠다고 한다. 그렇게 또 자연스럽게 잔여 가족들이 일어선다. 10인용 테이블에 나와 남편, 하이 셋만 남아 있다. 회사에서 회식을 해도, 아니 학교에서 점심을 먹어도 앞자리 선생님이 식사 중이면 기다주기 마련인데, 공사장 앞 함바집 마냥 급하게 고 이름 쓰고 나가듯 비워진 자리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난다.


"자기야, 우리 집 되게 신기하지 않아? 어쩜 이렇게 그냥 다 나가? 나가면서 인사도 안 해."


다행히 타격감은 제로다. 모양새는 잔반 처리반 같지만 후식 냉면 덕분에 황홀한 중. 바지 단추는 아까부터 열려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날을 위한 자리가 확실하므로 굳이 ATM기를 찾아 가지 않아도 되겠다. 그래서 그 주를 그냥 보내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가 그런다.  


"어버이날인데 뭐 없니?"


비슷한 종류로는,

-다음 주 내 생일이다.

-엄마 생일 뭐 할 거니?

-올 해 나 칠순이다.

-가져온 거 있으면 빨리 줘라.

-줘도 우리가 주는 게 많지 느네가 주는 게 많겠니?

등이 있다.


맡겨놨나.

"그런 말 좀 하지 마!"


구경하는 남편은 불편해 하지만 친정 아닌가. 할 말은 바로바로, 감정도 그대로 드러낸다.


"느네 언니가 그러더라. 부모한테는 잘해서 손해 볼 게 없다고."

"내가 언제 소오내 본댔어?"

음절 하나하나 힘주어 톤을 높여 받아친다.  


"아니 언니가 그랬다고. 마음은 넉넉하게 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안된다고."

"그러니까 그 말을 지금 왜 하냐고."

"니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잘 해석해 들어."


아니 왜 설명도 못할 말을 내뱉어 놓고 나보고 해석을 잘 하래. 밝은 저녁, 짐 챙겨 나서는 등에 대고 또 한다.


"다음 주에는 아빠 있으니까 꼭 준비해 와라."


그래 빚졌지. 한 없이 졌지. 살면서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졌지. 1년에 정해진 날 몇 번 봉투 들이미는 걸로는 어림도 없. 그걸 내가 모를까. 드시 돌려받겠다 작정하고 빌려준 인심이었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듯, 빚은 졌지만 빌린 것은 아니니 제발 그만했으면. 희생이 당연하고 그저 괜찮다고만 하는 부모님에게서는 슬픈 답답함을 느낀다고 하더라만. 스무고개 하듯 빙빙 돌려 표현하기보다 낫다는 것은 알지만 꼭 이렇게 명령하듯 요구하고 재촉해야 하는가.




주유등 빨다. 주유소 들러 급유를 마치고 카드를 뽑는데 주유기의 인사가 귀에 거슬린다.


"다음에 또 오십시오."


싫은? 안 올 건데? 내가 오고 싶을 때 올 건데?


자의에 흠집이라도 날 것 같으면 코 벌름거리면서 눈깔 뒤집고 난리. 청소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방 좀 치워." 하면 하기 싫어지는 그거. 공부하려고 했는데 "공부 안 하니?" 하면 싫어지는 그거. 엄마말 한마디 때문에 내 의지는 사라지고 마치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그게 화를 돋운다. 나를 꼭 그렇게 모냥 빠지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한가.


자식 된 도리, 내 생각대로  하게 내버려 으면.  늦을 수도 있지. 예비비 통장에 30만 원 남아 있는데 50만 원 맞춰서 줄라고 고민하다 늦었다 그래. 백만 원쯤 천만 원쯤 턱턱 내놓고 싶은데 고작 30이니 50이니 쪼잔하고 궁상맞게 계산하느라 좀 늦었다 그래. 이런식으로 날 자극하면 현금이 아닌 정성스런 손편지가 들어가는 수가 있다.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생명이 길리라고 장수를 약속하셨음에도 나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나쁜 딸. 나의 사랑은 사납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아침부터 엉덩이를 깠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