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 성공 제3원칙, 함께 해야 하는 '진짜' 이유
미모는 실패해도 예쁘다
나의 미모 메이트는 열다섯 살 정안이였다. 종업식날 작은 엽서를 내밀었던 2학기 우리 반 반장.
방학 첫날, 우리 반 단톡방에 기상 인증샷을 올렸다. 수요 없는 공급이 바로 이런 것.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3일간 특별한 설명 없이 사진을 투척했고, 아이들 몇몇이 하트와 엄지 척 이모티콘을 달아주기에 셋째 날 찌를 던졌다.
"선생님이랑 같이 해 볼 사람?"
이모티콘이 또 다다닥 붙었다. 내가 살아온 이래 가장 빠르게 움직인 날이었다. 밴드를 개설하고 링크를 잽싸게 공유했다. 최소한 셋, 많으면 다섯 쯤 되리라 예상했는데 통계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동일한 자극을 받고도 실천하는 사람은 5% 뿐이라고 하지 않나. 이게 이게 소름 돋게 정확한 수치였다. 24명의 5%, 1.2명. 정안이 딱 한 명, 우리 밴드의 유일한 회원이었다.
모객 행위는 생애 처음이다. 미라클 모닝을 꾸준히 잘해나가는 것도 아니고, 드러내 자랑할 만한 성과도 없다.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 판을 벌려 영업을 하고 고객을 뫼셔오다니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자신감인지 알 길이 없다. 내세울 거라곤 두 번의 망한 경험뿐인데 이 추진력, 나답지 않다.
자고로 자기 계발 좀 하는 사람이라면 '신청'과 '가입'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Yes24에서 보내준 택배는 꾸준히, 배우기 위한 돈쓰기에 망설임도 사라진다.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물어뜯듯 결제를 확 해버린다. 시작은 어려웠다. 나를 위한 지출이 익숙하지 않은 이름 아줌마. 그래서 첫 지출은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엄마표 영어'. 뜬금없기도 당연하기도 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 시작 덕분에 다음과 다음과 다음이 있었고 지금 여기, 브런치에 내가 있다.
나에게는 회원의 자리가 훨씬 익숙하다. 그 익숙함이 영업의 원동력이 되었으리라. '목표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을 몇 차례 경험하며 수행 여부를 확인하는 도구와 방법을 익히고 나니 이르케 이르케 해서 저르케 저르케 하면 된다는 견적이 사악 나온 것. '인증 행위'를 일삼는 일상에 익숙해진 것. 익숙하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밀고 나가는 힘으로 전환된다는 걸 돈 쓰고 배웠다. 역시 돈이 좋다.
정안이와 단 둘이 하는 챌린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는 차려진 상에 앉아 밥만 잘 먹으면 되었지만 이 모임은 내가 직접 상을 펼쳐 초대장을 보낸 것. 회원님에 대한 책임감이 더해졌지만 이상하게 그 부담감도 좋았다. 정안이어서? 내 학생이라서? 공감대가 차고도 넘치는 엄마들과 하던 활동에서 느껴본 적 없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본이 되고 싶었다. '실패해도 괜찮아'의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고,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스스로를 격려하며 응원하는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변태스럽게도 실패하는 날이 좋았다. 실패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이유를 함께 적었고, 잘할 수 있다고 나를 다독이는 메시지를 넣었다. 어른이라고 다 잘하는 게 아니라는 것, 선생님보다 더 잘하는 것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실패가 정안이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안도감을, 이따금 우쭐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나의 실패가.
그런데 괜찮다는 말이, 정안이에게 들려주려고 했던 그 말이 나에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안이를 위해 적은 기록이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나에게 와닿았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단 하루야. 망쳤다고 생각하지 마.'
'남은 시간에 충실하자.'
'오늘은 내 기분을 위해 성공한 셈 쳐주자.'
'계획한 건 못했지만, 계획하지 않은 중요한 일을 했잖아. 그러니 됐어.'
나에게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너그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다독이고 보듬어 주기 시작했다. 누구는 변명이라고, 그런 정신으로는 해낼 수 없다고 하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 내리기에 능했던 나에게는 핑계가 아닌 '변화', 나에게 일어난 최고의 변화이다.
미모는 실패해도 예쁘다. 기록하며 나를 격려하고,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줬더니 마음이 예뻐진다. 어제보다 눈곱만큼이라도 나아진 점을 악착스레 찾아내기 시작하니 나를 보는 눈이 고와진다. 다짐을 담아 위로하니 같은 변명을 거듭할 수가 없고, 작은 선포를 반복하니 격려가 핑계로 주저앉지 못했다. 실망감으로 시작한 하루에서 금세 벗어나고 좌절감이 끌고 오는 조급함에 틈을 내주지 않았다.
함께 했기 때문에 오늘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배웠다. 함께 하는 동료가 있었기에 건강한 말, 긍정의 언어를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나를 회원님 대하듯, 열다섯 정안이 대하듯. 스스로에게 야박할수록 그래, '함께'하기.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