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힙 발달."
"풉."
내가 터졌고, 내가 터지자 예비신랑이었던 지금의 남편 그 때의 남자친구가 터졌고, 뒤이어 담당 테일러님이 터졌고 결국 다 터졌다. 아 뭐가 문제지. 사십이 문제인가, 발달된 힙이 문제인가. 힙발달을 꼭 그렇게 진지하게 말씀하셔야만 했을까. 진짜 문제는 너무 웃긴데 아무도 안 웃어. 그래서 터졌다. 테일러님은 몸을 일으켜 안경을 괜히 고쳐쓰며 호흡을 가다듬었고, 옆에서 사이즈를 옮겨 적던 보조 테일러님은 입을 가렸다.
남편의 발달된 힙은 정말이지 탐스럽다. 자고로 엉덩이라는 것은 누운 3자의 형태로 엉덩이살과 허벅지 사이에 여기까지가 엉덩이이고 여기부터 허벅지라는 경계가 있어야 하거늘 와씨, 남편은 그 경계가 없었다. 움직임에 따라 옆라인은 오목하게 패였고, 측덩이가 들어갈수록 뒷덩이는 볼록. 입체감으로 말하자면 여성의 풍만한 가슴보다 더할 것이요 그래서인지 똥꼬도 더 깊이 박혀 있는 듯한 착시가 일었다. 집에서 입는 옷이라곤 드로우즈 한 장이 전부인데 엉밑살이 없는 것도 놀라웠지만 허리 밴드와 엉덩이의 최고점 사이에 빈공간이 생길 수 있다니. 자꾸만 손을 부르는 새우깡이 따로 없고, 탄탄하기를 넘어서 딱딱한 돌덩이 같은 남편의 힙은 정말 힙하다.
도대체 축구는 다치기 위해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반복되는 무릎 통증으로 프로 선수를 진료한다는 병원을 찾아가 초음파를 보는데 의사 선생님이 "선수 생활 하셨어요?" 라고 묻는 순간 내 남편의 정확한 상태를 알 수 있았다. 얘, 진짜구나. 내 남편은 축구에 미친자였다. 자신감과 자존감의 원천이자 삶의 동반자이다. 축구 한 게임 뛰고 오면 3킬로는 그냥 빠지니 먹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 남편이 진지한 얼굴로 "내일 축구하고 와도 돼요?" 라고 물으면 아들인가 싶으면서도, 털어내야 할 스트레스가 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다스리는 수단이 바로 축구였다.
그의 오랜 취미가 부럽다. 그림같은 애플힙도, 자신감과 자존감의 바탕이 될만큼 잘 하는 특기가 있다는 것도. 보는 축구에 만족하지 않고 한 겨울에도 얼굴이 벌개지도록, 머리통에서 김이 솟아오르도록 '하는 축구'여야만 하는 그의 쏟아붓는 열정도 부럽지만 가장 부러운 것은 그의 체력이다. 남편이 지치는 날을 본 적이 있던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언제든. 그래도 그의 컨디션은 항상 굿, 언제나 맑음이다.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면서 그 부러움이 간절하기까지 했다. 번번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일찌감치 시작한 하루를 받쳐줄 힘이 없다는 것. 내 체력은 거지 같았고 구질구질했다.
살면서 '그러다 죽는다'는 말을 두번 들었다. 한라산 등반에 성공한 교회 오빠에게 나도 한라산 오르는게 버킷리스트라고 하니 대뜸 너 그러다 죽는다고 죽음 예약. 그리고 작년 3월 아프지 않은데 자꾸 아파보인다는 말을 듣다가 실은 새벽에 일어나고 있다고 조심스레 고백하니 "샘 그러다 죽어요. 잠이 얼마나 중요한대요." 얼굴이 얼마나 안 좋아 보이는 지 아느냐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우선 잠을 잘 자야 한다고.
난 미라클 모닝하면 죽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난 평생 잠만 잘 자다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인가. 이대로 살고 싶지 않아 시작한 도전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진짜 문제는 '체력'이 나에게 동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체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체력 키우겠다고 무언가 해볼 마음이 도통 생기지 않는 것 그게 더 큰 일이었다. 왜. 힘드니까. 가만히 있어도 힘든데 뭘 더 해. 유산소 운동이든 근력 운동이든, 5분이든 10분이든 운동이 주는 활력을 체험하기 까지 기다릴 체력도 되지 않았다.
지금도 내 육체는 흐물거린다. 여전히 저질이요 쓸만한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은 되는 미모. 신기한 일이다. 유독 피곤한 날은 눈알이 빠질 것만 같고, 어떤 날은 두통처럼 어느 날은 술에 취한 듯 잠이 찾아온다.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육아에서 무단으로 조퇴하는 날도 있다. 나의 미모가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는 증거가 이것이다. 잠이 나를 찾아오는 것, 그것도 일정하게.
꼭 지켜야 하는 시간은 기상 시간이 아니다. 특히나 나처럼 몹쓸 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고 싶다면 자는 시간을 지켜야 한다. 매가리 없는 육체에 어설픈 완벽주의까지 있다면 더더욱, 일어나는 시간에 관대해야 하며 취침 시간에 엄격해야 한다.
동 트기 전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면, 오늘의 태양을 맞이하고 싶다면 잘 자자. 지금 잠들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몸을 눕혀주고 눈을 감아주고. 그리고서 성시경처럼 다정하게 나에게 말해주는 거다. 잘 자요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