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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Apr 19. 2024

말을 잘 듣는 이유

브런치를 오아시스라 부르는 스팀박이 말하길,


"샘! 웃긴글 써요 웃긴글. 학교에서 샘이 얘기하는 그런거 쓰면 얼마나 웃기겠어. 길게 쓰지 말고 짧게, 요즘은 다들 짧게 쓰니까."


첫째, 스팀박 말 한마디에 다섯 줄 짜리 글을 발행했다. 분량 압박에서 벗어나 매거진 하나를 쉽고 짧게 쓰는 것으로 재정비 했다. 물론 아무도 모르지만.  


둘째,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그것을 외면해 왔을까 생각한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도, 휴대 전화 사진첩에도, 인스타 저장 폴더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 했던 '웃긴 거'. '유머' 라는 똑 떨어지는 단어가 있음에도 '웃긴 거'라고만 이름 붙이는 이상한 고집과 어느 누가 보아도 터질 고퀄만을 '선별'해 모아두는 정성까지. 웃긴 것을 향한 내 사랑을, 다른 이도 아닌 나 스스로 왜 모른체 했을까.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나는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는가. 예순쯤 되어야 귀가 순해진다는데 마음만은 육십세였던가. 자청이 말하는 자의식 해체, 그게 바로 이런건가. 그 어떤 방어기제 없이 순순히 고분고분 어쩜 이래. 글쓰는 사람은 다정하고 사고가 유연해 진다던데 벌써 그 경지에 다다른 것인가.


아마도 누군가가 글에 대해 말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나보다. 글이 어떤지, 읽는 사람이 보기에 어떤지. 전문가, 대가들이 알려주는 '그리란 이런거시다' 이런 이야기 말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아 성과를 내신 '대다난' 분들 말고, 극히 평범한 독자의 눈에는 내 글이 어떤지 말이다. 누구라도 글에 대해 뭐가 됐든 뭐라고든 말 좀 해줬으면 해서, 그래서 스팀박의 말을 이렇게도 잘 듣나보다. 브런치를 오아시스라 부르는, 내 글 한 편 읽어보지 못한 그녀의 말을. 관심 받지 못하는 관종의 마음이 참 애닳다 애닳어.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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