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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사쁨 May 28. 2024

기분이 태도가 되어야 한다.

그날의 종례

 우승이라는 기분에 취해 아이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종례는 이런 날 더 잘해야 한다.



 

 "얘들아, 우리가 왜 우승을 했을까?"


 질문으로 시작했다. 반장 부반장 눈을 반짝이며 열심, 단합이라는 단어를 조합한다.


 "맞아. 열심히 최선을 다하기도 했지만 간절해서, 간절하면 이기는거야. 간절함으로 최선을 다 하면 이렇게 우승 하는거야. 줄다리기 이길라고 예상한 사람 있었니?"


다들 고개를 가로 젓는다.


 "우리 다 질거라고 생각했잖아. 그런데 느네가 정말 진지하게 덤비더라고. 그런거야. 그렇게 하는거야. 우승하니까 어때. 기분 정말 좋지?"


-

-너무 좋아요

-진짜 행복해요 


사춘기 아이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목 놓아 대답하는 일은 흔치 않다.


 "어 그거. 그 맛을 봐야해. '와,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더니 이야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그 성취한 맛을 보면 사람은 계속 그렇게 살고 싶어지거든. 대충 하고 그럭저럭한 결과를 얻는 사람 계속 그렇게 살아. 왜. 이 맛을 모르니까. 대충 했는데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있어. 그건 그 사람에게는 독이 돼. 그런데 열심히 하고 좋은 결과를 맛 보잖아. 그럼 그 맛을 계속 보고 싶어. 그래서 계속 열심히 하게 돼. 여러분들이 이 맛을 보게돼서, 선생님은 그게 가장 기뻐.


나는 한 거 없어. 너희가 다 했어. 여러분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반장 인사!"


 그렇게 아이들을 그렇게 보냈다. 들뜬 마음, 나대는 심장은 마찬가지일텐데 나는 차분하게 말했고 아이들은 귀를 모아 들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나는 아이들을 본다.




 나는 우승에 미친자인가. 1등을 해야만 심신의 안정을 찾고 속이 후련한 사람일까. 결코 아니다. 우승해도 나에게 떨어지는 콩고물 같은 건 없다.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기분 좋은 것이 전부이다. 우승에 환장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나에게 꼭, 그렇게,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하는 것이냐 물으신다면 무조건 Yes.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내신 1등급을 찍는 아이들에게 꼭 물어보곤 했다.  


 "공부 힘들지 않아?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해. 어떤 마음으로 하는거야?"


 지역의 격차, 학교 마다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어느 학교에서전교 1등은 쉽지 않다. 1등급은 쉬 얻어지지 않는다. 지역 내에서 선호도가 떨어지는 학교라 전략적으로 지원한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여기 와서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말을 해마다 들었다. 우수한 아이들끼리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제대로 잠은 자나 싶을만큼 아이들은 안쓰럽고 짠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스스로를 쥐어짜내게 만드는지 그 동기가 항상 궁금했다. 과연 뭐라 답할까. 꿈을 위해서? SKY 가려고? 의대가 목표라서? 사실 머리가 좋아서 크게 힘들지 않다고?


 "힘들긴 한데, 그런데 결과가 나오면 그게 기분이 좋아서요."


 고작 기분 때문에, 겨우 기분 좋으려고. 그놈의 기분, 내가 해냈다는 그 기분. 성취감과 뿌듯함이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보상인 것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주는 보상, 나에 대한 만족감. 했는데 된 그 짜릿함. 그 기분이 이토록 중요하다. 아이들의 기쁘고 행복한 마음의 핵심이 바로 이 뿌듯하고 짜릿한 만족감과 성취감이다. 그래서 우승해야 한다. 해 봐야 한다. 그 맛을 꼭 봐야한다. 그깟 기분이 태도를 만기 때문에.




 특히나 올해는 유독 일이 많았다. 체육대회 앞둔 한 달간 '오늘의 사건'이 매일 있었다. 끝 모르고 쌓이는 갈등에 다른 반 친구들의 놀림과 매서운 눈초리까지 받아야 했던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참 무거웠다. 그래서 더 우승하고 싶었다. 힘들어 보이고 어려워 보이고 가능성이 없어보여서 그래서 더. 그게 기회니까. 이럴 때 우승이라는 축포가 터져야 감동과 감격은 더할 것이요 우리는 하나로 더 견고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테니. 우승 평행이론(*체육대회에 우승할 때마다 담임인 나에게 경사가 일어나는 현상) 없어도 되니 제발 우승하게 달라고 기도했는데 이상하게 더 기뻐. 내 자랑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서 그런지 교무실에 돌아와서도 마음껏 티냈고 자랑스러워했다.


 '정염'


 ‘열정’ 따위의 단어로는 성에 차지 않는 이 불타오르는 이 감정. 정염. 그래, 정염이다. 욕정에 빗댈 수 있을 만큼 뜨겁고 집착을 넘어선 중독이며 내 모든 감각과 신경을 일으켜 세우는 생존감이자 생명력, 살아있음을 확인하니 나 그 자체일지도. 분과 열기로 가득 찬 하루. 그 여운은 하루로는 부족하다. 얼마를 느껴야할까. 이 깊은 충동의 잔상. 너희의 마음이 더 활활 타오르기를. 정말이지 체육대회는 날 미치게 한다.


 퇴근 길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집으로 가지 못한 그날의 기록은 여기까지.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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