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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블리 Sep 21. 2020

배려가 부족한 사회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2018년 4월, 전 국민을 분개하게 만든 뉴스가 있었다. OO지역 아파트 택배 대란 사건이었다. 해당 아파트는 주민의 안전을 이유로 택배 차량이 단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택배 기사들은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일일이 손수레로 물건을 옮겨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 소식은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고, 아파트 주민들을 비난했다. 방송사와 언론매체에서는 한 달 넘게 해당 소식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손 수레로 택배를 배달하는 모습, mbc뉴스 화면 캡처


처음 뉴스를 접했을 때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많은 택배를 일일이 손수레로 배달해야 하는 택배 기사가 안쓰러웠다. 며칠 뒤, 한 주민의 인터뷰를 보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 단지 안으로 들어온 차량으로 인해 아이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라는 것이다. CCTV 속 장면은 정말 위험해 보였다. 내가 사는 곳도 하루에 수많은 차량이 오간다. 특히 아파트 안에서 굉음을 내며 경주하듯 빠르게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볼 때면 부모로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뉴스 보도처럼 아이들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면 분명 아파트 안에서 논쟁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즉, 어떤 이유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 트렌드는 긴급 차량 외에는 지상으로 차가 들어올 수 없도록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추세이다. 그 이유는 아파트 실 구매자에게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아파트'라는 것을 각인시켜 분양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는 지상에 차가 없는 아파트를 선호한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다는 사실이 아파트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해당 주민들도 지상에 차가 없는 아파트라는 조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그들의 행위에 아쉬움이 남는 건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시간과 번거로움을 감당해야 하는 택배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파트 게시판에 붙여둔 '명품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택배 차량의 출입을 통제한다.'라는 문구는 사람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조금 독특한 곳이어서 이해가 필요하다. 아파트는 다양한 생각과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층간소음, 주차 문제, 흡연문제, 경비원 갑질 등 하루에도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 어떤 사건이 아파트 내에서 이슈화되면 순식간에 공동 의제로 표출되어 입주자 대표 회의에서 대응하게 된다. 문제가 된 아파트도 하루아침에 내린 결정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앞서 설명했듯이 요즘은 지상 주차장을 없애는 추세인데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높이는 여전히 몇십 년 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층간소음도 마찬가지다. 층간소음으로 이웃 간 살인까지 벌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층간소음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정부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정부와 국회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인데 엄한 시민들끼리 싸우는 것이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웃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토부 소속 국회의원실에 계속 민원을 넣어 제도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방송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앞뒤 다 자르고 '주민들이 택배 차량을 거부한 사실, 택배원이 고생하는 모습'만을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본질을 바라보기보다 눈에 보이는 정보가 진실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뉴스를 본 사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개념이 있는 기자라면 그 이면에 있는 것까지 취재해서 정부와 국회가 제대로 일하도록 압박했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일부러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면서도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기자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니까.


지금 우리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방송, 뉴스, 인터넷, 유튜브,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하는 눈이 필요하다. 스스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질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보게 될지 모른다.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자. 무엇이 부족했는가?


환경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인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사람이 존중받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 생각한다.


그런 사회가 되려면 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각자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경비원, 환경미화원을 만나면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해 보자. 감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수고하는 택배 기사님께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 출발한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오래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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