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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블리 Sep 21. 2020

내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세상은 꿈꾸는 사람이 바꾼다.


어릴 적 꿈은 TV에 나오는 슈퍼맨이 되어 지구를 지키는 것이었다. 악의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한 손에는 막대기를, 어깨에는 빨간 보자기를 걸치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순박한 소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내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와 나는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젊은 날의 추억이 잊혀 갈 때쯤 어느새 나이 마흔에 두 딸 아빠가 되어있었다. 슈퍼맨이 되어 지구를 지키겠다던 순수함은 사라지고 사회라는 틀에 갇혀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어있었다.


20대까지만 해도 젊음의 혈기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정권의 불합리함에 맞서 싸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정과 부패, 반칙과 특권, 남을 짓밟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탐욕, 우리 사회 전반에 불의한 일들이 넘쳐났지만, 슈퍼맨이 나타나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무 막대기에 망토를 걸친 용맹한 소년의 모습은 사라지고 안타까운 한숨만 내쉬며 모른 척 눈을 감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개되는 온갖 사건 사고 소식이 못내 안타까우면서도 이내 별일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날이 늘어갔다. 점점 무뎌지는 나를 보며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탓하기만 하는 삶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답게, 사람답게, 마땅함을 좇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생각이 깊어지니 스스로 질문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왜 사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인간에 대한 근본과 철학에 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 마땅함을 좇아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정답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서로 다른 자아를 지닌 존재이므로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보편적인 상식이란 것이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 있는 것이다.


예컨대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잘 섬기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며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웃어른을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공경하도록 가르침 받았다. 약자를 배려하고 불의한 일에는 소신을 굽히지 말고 심지를 올곧게 정진하라고 배웠다.


사람이 사람답게 제구실하며 산다는 것은 이런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닐까? 물론 세상 모든 일을 그렇게 하며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람 된 도리를 하며 살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원망하거나 환경을 탓하는 것이 내 삶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사소한 일에도 조건을 먼저 따졌다면, 환경이 어떠하든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아도 내가 변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오르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게 된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부터 가족 문화가 바뀌거나 집단을 바꾸기도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될 것이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사람도 조직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10년이 흘러야 강산이 변하듯 변화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는 길이 더디고 답답할지라도 돌아보면 많은 것이 변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농부가 열매를 수확하려면 오랜 시간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결실을 맛볼 수 있다. 결실을 보려면 날씨와 온도, 물과 거름, 농부의 땀방울,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때와 시기도 중요하지만, 사람마다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씨앗을 뿌리고 어떤 이는 물을 주고 어떤 이는 거름을 주고 어떤 이는 열매를 수확할 수도 있다. 비록 내 손으로 열매를 수확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뿌린 씨앗에 누군가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영화 속 주인공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변화는 꿈꾸는 사람의 몫이고 세상은 꿈꾸는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 글을 통해 세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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