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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블리 Dec 29. 2020

당신의 아파트에 사회복지사가 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파트 공동체-똑똑똑 캠페인



언젠가 TV에서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서울 한 아파트에서 사람이 심장 마비로 쓰러졌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주민이 심폐소생술로 살렸다는 뉴스였다. 사람을 살린 주민의 직업은 의사였다.


또 다른 뉴스에서는 울산 한 아파트에 불이 난 사건이 있었다. 주민들이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누군가 혜성처럼 나타나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는 것이었다. 주민의 생명을 살린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소방관이었다. 뉴스에 따르면 당시 소방관은 쉬는 날이어서 소방장비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목숨을 걸고 신속하게 주민을 대피시켰으며,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소방관 한 명이 여러 사람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참사 막은 '새내기 소방관', 주민 13명 구했다 (SBS 8뉴스 2015.01.10)

어디까지나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아파트에 이런 주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파트에 사회복지사가 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 속의 답을 찾으려면 사회복지사가 뭘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복지사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며칠 전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뜸 나보고 무슨 일을 하느냐고 기사님이 물었다. 나는 사회복지사라고 대답했고 기사님은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좋은 일을 한다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좋은 일 하시네요.’


사회복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를 '좋은 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쯤으로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 사이 관계를 돕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을 한다. 사람 사이 관계를 돕고 더불어 살게 돕는 사회복지사가 아파트에 살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실제 우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아파트는 조금 특별한 공간

흔히 아파트라고 하면 인사도 안 하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다. 아파트는 한 건물에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다. 같은 공간에 살지만 각자 살아온 방식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러다 보니 층간소음, 주차 시비, 경비원 갑질과 같은 문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발생하곤 한다. 이웃 간에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지만, 좀처럼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다.


종종 우리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웃을 만나는가에 따라 일상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에는‘나’는 문제가 없고 ‘이웃이 문제’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웃을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웃이 인사를 하든 안 하든 이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웃을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하면 되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내가 먼저 이웃집 문을 두드리면 된다. 아주 단순한 논리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먼저 인사하고 나누면 이웃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사람으로 인해 아파트 문화 자체가 바뀔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이러한 가치로 시작한 일이 바로 아파트 공동체 이야기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똑똑똑 캠페인’

아내와 나는 사회복지사 부부다. 결혼하고 8년 동안 여섯 번의 이사 끝에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10년은 살 요량으로 3년 전 이사를 했다. 오래도록 살 집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삭막한 곳이 아니라 인사도 하고 접시도 오가며 정이 흐르는 아파트가 되길 바랐다.


입주 전부터 아파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일이‘똑똑똑 캠페인’이었다. 똑똑똑 캠페인은 이웃집을 찾아가 먼저 문을 두드리고 인사 나누는 활동이다. 캠페인의 취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홍보 포스터를 만들었다. 포스터에는 좋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담았고, 어린아이도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방법과 절차를 소개했다. 완성된 포스터를 각 동 엘리베이터에 붙이고 입주민 카페에도 올렸다. 내가 올린 글은 삽시간 만에 인기 게시물이 되었다. 주민들이 너도나도 댓글로 동참 의사를 밝힌 것이다.

똑똑똑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파트 안에서도 ‘앎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사를 통해 앎의 관계가 시작되고, 아는 관계가 되면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무엇보다 관심이 생기면 이웃집 아이를 유심히 살피게 된다. ‘아이 한 명이 자라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파트에도 이웃 아이를 살피는 긍정적 관계가 생기기를 바랐다.


똑똑똑 캠페인, 한 달 후

문득 궁금했다. 사람들이 정말 인사를 했을까? 몇 집이나 했을까? 이웃과 처음 만나는 과정은 어땠을까? 그냥 다 궁금했다. 그래서 간단한 설문을 만들어 입주민 카페에 올렸다. 나름대로 똑똑똑 캠페인의 성과를 평가해본 것이다. 똑똑똑 캠페인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아파트 주민의 20%가 넘는 120세대가 설문에 참여했으며, 응답자의 62%(80세대)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인사할 예정이다’를 포함하면 응답자의 70%(90세대)가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인사를 통해 이웃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은지, 이웃 간에 배려가 느껴지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0%(66세대)가 ‘그렇다.’라고 대답했으며, 다음으로‘잘 모르겠다.’ 29.3%(32세대), ‘그렇지 않다.’ 10.9%(11세대) 순으로 나타났다. 부정보다 긍정적 답변이 높게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질문은 의도적이었다. 사람 사이 관계를 돕고 더불어 살게 돕는 사회복지사의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욕구를 물은 것이다. 기회가 되면 이런 모임을 해보자고 주민들에게 제안하고 싶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응답자의 61%(58명)가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으며, ‘기회가 된다면 고려해 보겠다’라고 응답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무려 86%(85명)가 주민모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육아 모임, 아빠 모임, 꽃꽂이, 퀼트, 책 모임, 축구 동호회와 같은 여러 모임을 기획하고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파트 안에서도 얼마든지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게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더불어 살게 돕는 사람

아파트로 이사한 지 어느새 3년이 되어간다. 2018년 처음 주민들에게 캠페인을 제안했고 우리 아파트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인사를 잘한다. 캠페인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런 문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살피고 거드는 사람이 있다면 오래도록 살고 싶은 아파트가 될 것이다. 앞에서 소개한 의사와 소방관 사례처럼 사람 사이 관계를 돕고 더불어 살게 돕는 사람이 바로 사회복지사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사회복지사가 많아진다면 분명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간혹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퇴근하고도 이렇게 일하면 힘들지 않으세요? 일의 연속 같아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일이 아니라 내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활 속 작은 실천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환경을 생각하며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실천하는 것뿐이다.


세상 그 어느 것도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없다. 세상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나갈 때 변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확신과 믿음이 있다. 변화는 꿈꾸는 사람의 몫이고 세상은 꿈꾸는 사람이 바꾼다는 믿음이다. 내 글을 통해 세상의 작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내 자리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한국사회복지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소셜워커에 기고하고 있으며, 똑똑똑 캠페인은 2020년 12월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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